Page 56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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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내심 두려웠다. 스스로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고 있었고, 대한제국의 후
            견 구가를 자처한 러시아가 비록 러일전쟁에 패배했어도. 평화회담을 기점으로 대한제

            국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다시 흔들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헤이그에 도착한 대

            한제국 특사를 본 일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러시아의 속마음

              특사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이 2세를 예방하고 대한제국의 처지를 호소
            하고 도움을 청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대한제국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바라는

            취지로 직·간접적으로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는 특사들을 만나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의장이자 러시아 전권 대표 넬리도프에게 대한제국 특사들을

            멀리하라는 밀지를 보낸다. 이러한 러시아의 상반된 태도는 러일 전쟁 종결을 위한 포

            츠머스 강화조약(1905.09.05.)의 영향 때문이다. 이후 진행된 러일 간의 비밀 협상에서 포
            츠머스 강화조약에서 애매하게 처리되었던 한국의 주권 문제를 일본에게 위임하였고,

            일본은 러시아가 외몽골에서 특수 이익을 누리는 것을 보장하는 내용을 협약하였다.
            즉 러시아는 대한제국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대한제국 특사단의 활동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특사단은 마지막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성명서

            를 번역하고 회의를 준비해 갔다. 그러나 의장국 러시아는 특사단에게 참석 불가를 통

            보하였다. 헐버트는 일제 감시망을 피해 특사단의 이동을 돕고 서방 언론과 접촉해 나
            갔다.

              헤이그(현지어는 덴 하그 Den Hagg)에 도착한 특사단은 드 용 호텔(De Jong Hotel, 현 이준열

            사 기념관)에 여장을 풀고 첫 공식 일정으로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특사단의 활동은 곧장
            일본대표단에 흘러 들어갔고, 일본은 대한제국의 회의 참석을 방해했다. 특사단은 장

            외 활동을 벌였다. ‘무슨 이유로 대한제국을 제외하였는가’란 논설, 성명서 전문을 게

            재하였다. 각국 기자단의 국제 협회에서 이위종은 ‘대한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란
            프랑스어 연설로 청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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