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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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들의 진군은 사전에 수립된 계획에 따라 도착하였다. 사절단은 루스인들이 몽골의 적이
수행된 정복 전쟁이 아니라 미지의 땅에 대한 아니며 몽골은 단지 자신들의 노예인 킵차크를
일종의 정찰 작전이었다. 제베와 수부타이의 몽 징벌하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루스인들로 하여
골군은 이란과 이라크를 거쳐 북쪽의 카프카즈 금 킵차크족을 공격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
로 향했다. 카프카즈 산지에는 이슬람 국가인 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루스인들은 이것이 속임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 국가인 그루지야가 있 수라고 보고 10명의 몽골 사절들을 모두 죽여
었는데, 아제르바이잔은 공납을 받고 그냥 통 버렸다.
과하였지만, 그루지야는 몽골군에 합류한 무슬 그리하여 루스족 국가인 루시와 몽골의 충돌
림 투르크족과 쿠르드족 병사들이 “기독교도 이 일어났다. 전투는 1223년 5월 31일 오늘날
들에 대한 성전”을 구실로 마구 약탈하였다. 그 의 우크라이나 동부 칼카 강변에서 벌어졌다.
후 몽골군은 카프카즈 산중 좁은 골짜기에 갇 이 전투는 루시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킵차
혀서 큰 위기에 봉착하였으나, 적들 가운데 일 크족도 루시 편에 서서 함께 싸웠지만, 전투 도
부를 차지하고 있던 투르크계의 킵차크인들(러 중 먼저 달아나는 바람에 루시 진영은 쉽게 무
시아에서는 ‘폴로베츠’라 불렸다)에게 같은 투르크족 너져 버렸다. 몽골군은 도망가는 루스족을 추
임을 내세워 탈출할 수 있었다. 격하였지만, 오랫동안 루시 땅에 머물지 않았
몽골 군대는 카프카즈 산맥 북쪽으로 넘어 다. 볼가강을 거슬러 올라가 중류 지역에 있던
가자, 이전에 자신들의 탈출에 협조해 준 킵차 볼가 불가르국을 공격하여 많은 전리품을 취
크의 본진을 만나게 되었다. 넓은 초원에서 몽 하고 전에 호라즘을 돕던 캉글리족도 정벌하였
골 군대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몽 다.
골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볼가강과 돈 1222년부터 1223년까지 이어진 원정은 그
강 유역에서 킵차크 본진을 공격하고, 다른 한 경로를 볼 때 카스피해를 한 바퀴 돈 셈인데, 일
쪽은 바닷길로 크림반도로 들어갔다. 크림반도 부 부대는 크림반도와 드네프르 강까지 진출했
에서는 제노바인들이 운영하던 부유한 무역항 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먼 거리까지 원정
수닥을 약탈하였다. 몽골군의 공격을 견디지 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 원정에 칭기즈칸의 장
못한 킵차크족은 어쩔 수 없이 서쪽의 키예프 자인 주치는 참여하지 않았다. 주치는 이전의
로 달아났다. 키예프의 루스인들은 예전에 들 호라즘 원정 때 두 동생과 갈등을 겪고, 이탈하
어보지 못했던 무서운 적이 진군해온다는 소식 여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을 듣고 그들과 맞서 싸우기로 하였다. 이들이 그래서 1222-1223년의 제1차 러시아 원정은
병사들을 결집시키고 있을 때, 몽골 사절단이 제베와 수부타이 두 사람이 지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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