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대한사랑 11월호
P. 11

2025. 11
                                                                                             2025. 11

            는데, 이를 영수사벽화묘(迎水寺壁畫墓)라 부른                    야기 쇼자부로는 1921년 2월에 발표한 논문에

            다. 이 벽화무덤의 발견 이후 그 발굴을 주도한                   서, 영수사벽화묘의 벽화에 나타난 인물의 민

            일본학자 야기 쇼자부로(八木奘三郎)는 그 벽화                    족 관계를 분석하면서 그 인물이 “고구려족의
            무덤에 대한 모사도 등의 자료를 담은 보고서                     유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를 남겨놓았다. 그 이후 두 명의 일본학자가 그                   언급하였다.    3)

            벽화무덤을 살펴보았고, 역시 보고서를 남겨놓                      1919년 말에 현지에 가서 직접 그 고분을 살
            았다. 이들 세 명의 일본 학자들이 남긴 보고서                   펴본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도 1921년 3월에

            에는 이 벽화무덤의 고구려 관련성을 언급하고                     발표한 논설에서 “고분의 연대에 대하여, 야기
            있다.                                          씨(八木氏)는 한대(漢代)의 것이라고 하고, 교토대

              필자는 일본학자들이 영수사벽화묘를 고구                      학 모씨(某氏)는 고구려 시대라고 했다고 전해

            려와 연관시켜 언급한 것을 주목하였고, 몇 년                    들었다. … 나는 오히려 벽화의 성질로 보아 고
            전 이들의 보고서를 번역하여 학술지에 게재하                     구려 시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할 것

                                                                                 4)
            였다.  2)                                      이라 여긴다.”고 언급하였다.  1920년 11월에
              [사진2]의 오른쪽 인물이 주인공인데, 그 주                  영수사벽화묘를 직접 고찰한 하마다 고사쿠(濱

            인공이 머리에 쓰고 있는 관(冠)은 전형적인 고                   田耕作)도 1921년 7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벽화

            구려의 머리쓰개인 절풍(折風)이다. 무덤 주인공                   의 성질은 조선의, 이른바 고구려의 고분과 유
            의 벽화에서 고구려의 특색이 선명하게 드러나                     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쓰카모토(塚本) 박사 및

            는 것이다. 또한 처음 발굴한 야기 쇼자부로에                    나이토(內藤) 박사 등의 설(說)에 따라 고구려라

            의하면, 이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여러 종복(從                   고 해도 좋다고 본다. … 이 문제는 오늘에 있
            僕)들도 역시 한족(漢族)이 아닌 만주식(滿洲式) 인                어서도 거의 결정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

            물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이 벽화무덤은                      다. 단지 고구려설이 조금 더 온당하지 않을까

            고구려와 관련성이 높은 것이다.                            하고 생각할 뿐이다.” 라며, 고구려와의 관련
                                                                           5)
              1919년 6월에 영수사벽화묘를 직접 발굴한                   성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2)임찬경, 「요양 영수사벽화묘의 고구려 관련성에 관한 두편의 논문」『仙道文化』제23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17.
                임찬경, 「영수사벽화묘의 고구려 관련성에 대한 하마다 고사쿠의 논문」『仙道文化』제26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19.
             3)八木奘三郞, 「遼陽發見の壁畫古墳」, 『東洋學報』第十一卷第一號, 1921.
             4)塚本靖, 「遼陽太子河附近の壁畵ある古墳」『考古學雜誌』第11卷第7號, 1921, 225쪽.
             5)濱田耕作, 「遼陽附近の壁畵古墳」『東亞考古學硏究』, 岡書院, 1930, 425∼426쪽.




                                                                                              11
                                                                                              11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