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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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통맥바로잡기ㅣ고구려②

                                 고구려와 한나라의 대전쟁,

                      400년 한(漢)제국의 운명을 결정 짓다



                                - 고구려의 좌원대첩이 역사 속에 묻힌 이유 -






                                                                           글. 이매림(대한사랑 교육이사)

            고구려 초기 역사 심장부를 지배하고 있는                       유지했다는 기록이 『자치통감』과 여러 사서에
            한사군 망령                                       공유되었다. 또한 관련 유적이 북경 주변 지역

              한국인들이 한(漢)나라와 연결된 역사로 인식                   에서 발굴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니 낙랑
            하는 한국사는 ‘한사군(漢四郡)’이 대부분일 것                   군 사망을 선포하였던 한국 사학계는 큰 결심

            이다.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한나라의 4군이 평                    (?)을 하게 된다. 낙랑군 “멸망”이 아닌 “퇴출”

            양을 중심으로 420년간 고조선 영역을 통치
            했다는 것이 한국사의 고대사 요지이다. 그리

            고 고구려 미천왕 시기(313년)에 이 4군 중 낙랑
            군을 멸망시켰다는 것이 특히 강조되었다. 평

            양의 기자조선을 강조하던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위만조선과 낙랑군까지, 종합 역사 선물
            셋트로 위치 지정을 평양으로 셋팅(setting)한 이

            후, 모든 한국사는 이를 기준으로 지명의 위치

            와 역사 내용이 서술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
            온 배경은 조선 시기나 광복 후까지도 해소되

            지 않았던 사료의 데이터베이스화 부재와 공유

            문제였다. 『삼국지』, 『한서』. 『후한서』 등 그 시
            기에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사료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평양에서 탄생해
            서 미천왕 시기에 멸망했다고 믿었던 낙랑군이

            다시 살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고구려의 공격                     많은 사료와 고고학적 발굴로 ‘평양 낙랑군설’이 허구로 밝혀졌음
                                                         에도 불구하고, 평양 낙랑군을 고수한 <한겨레 21> 기고 기사의
            을 받은 낙랑군이 멸망하지 않고 계속 명맥을                     낙랑군 위치(카톨릭대 기경량 교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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