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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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표현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계 하지도 않았던 낙랑군, 대방군을 끝까지 고수
속적인 사료 공유와 한사군 관련 유적발굴은 하려는 학계의 눈물겨운 논리이다.
한국 사학계가 두 번째 큰 결심(?)을 하게 만든
다.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의 공격을 뚫 평양 낙랑군을 위해 고구려 역사도 부정한
고 요서로 교치(僑置) 되었다는 논리 속에 낙랑 한국 사학계
군 퇴출로 수정된 부분을 다시 되돌려 “낙랑군 고구려의 초기 역사 시기, 평양 지역에 낙랑
은 평양에서 멸망했고, 잔존 세력이 요서 지역 군과 대방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학계의
이나 주변 지역에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명맥을 주장은 급기야 『삼국사기』「고구려본기」도 부
유지했다”라는 수정안이 등장했다. 바로 2025 정하고 축소하는 단계까지 도달하는데, 이는
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조선실을 리모델링 후 이미 대일항쟁기 일인(日人)학자들이 주장한 『삼
에 개관하면서 공개한 내용이다. 평양에 존재 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의 기간을 더 연장한
【표1.고구려의 천도시기와 지역, 존속기간표】
도읍지
천도 시기(왕) 천도시기 도읍지 존속기간
차수
첫 도읍 1대 고추모왕 BCE37 졸본 40년
1 2대 유리왕 22년 CE3 국내 206년
2 10대 산상왕 13년 CE209 환도성 38년
3 11대 동천왕 21년 CE247 평양성 95년
4 16대 고국원왕 12년 CE342 환도성 1년
5 16대 고국원왕 13년 CE343 평양 동쪽 황성 84년
6 20대 장수왕 15년 CE427 평양 159년
7 25대 평원왕 28년 CE586 평양 장안성 82년
멸망 26대 보장왕 27년 CE668 평양성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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