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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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렀던 대전쟁 승리 기록(大捷, 대첩)은 세 개 정

            도일 것이다. 첫 번째가 612년에 있었던 을지
            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

            (薩水大捷)이다. 우중문과 우문술이 등장하고 수

            나라 30만 5천 명이 쳐 들어와 2,700명이 살아
            돌아갔다는 전쟁이다.

              또 하나는 645년 양만춘 장군과 연개소문
            장군이 등장하는 안시성(安市城)전투이다. 당나

            라 황제 이세민이 30만 대군을 직접 진두지휘

            하여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본인의 눈알이 뽑
            히고 당나라 역사에 기록을 하지 못하게 할 정

            도로 당이 완패한 전쟁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고구려 강이식 장군이 수

            나라군 20만 명을 거의 전멸시킨 598년의 임

            유관(臨渝關) 전투이다.
              여기에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고구려의 대 당

            나라 승리 전쟁이 있다면 바로 662년의 사수                                                   영화 <안시성>

            (蛇水)전투이다. 연개소문 장군이 당나라 방효태
            의 20만 대군을 전멸시킨 전쟁이다. 그런데 살

            펴본 4개의 대전 승리는 ‘대첩’으로 기술해도                    는데,(『삼국사기』「고구려본기」<대무신왕>조) 원래 전

            무난하다. 하지만 살수전투만을 대첩의 성격으                     한의 낙랑군은 왕망의 신(新)나라가 건국되면서
            로 기술하고 안시성과 임유관, 사수전쟁은 ‘전                    “낙선(樂鮮)”으로 바뀐다. 왕망은 태수 대신 '태

            투’로 기술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윤(太尹)'이라는 관직을 사용하게 하였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와 중원과의 전쟁은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                       낙랑군(樂浪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3년에 열었

            쟁이 전부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다. 왕망은 낙선(樂鮮)이라 했다. 유주(幽州)에 속한
            느낌이다. 무엇일까? 바로 고구려와 한나라의                      다. 가구수는 62,812이고 인구수는 406,748명

            전쟁 기록이 없다. 44년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이다. 운장(雲鄣)이 있다. 현은 25개이다.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다                      (樂浪郡, 武帝元封三年開. 莽曰樂鮮. 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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