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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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 기록해 두었는데, 여기에

                                                         좌원(坐原)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명확히 해
                                                         야 할 것은 그 위치를 정확히 비정하지 못한다

                                                         는 의미는 위치 파악이 어렵다는 부분도 있지

                                                         만, 『삼국사기』가 편찬될 당시 고려시대의 영
                                                         역이 아니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교과과정에서 배운 고구려의 서북경계로도 좌
                                                         원의 위치를 비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삼국사

                                                         기』에는 고구려의 영역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
                    백암 박은식 선생                               『명림답부전』 표지
                                                         록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육을 목적으로 『대동고대사론』·『동명성왕실

            기』·『명림답부전』·『연개소문전』·『발해태조건국                    2년 봄에 왕이 장수를 보내어 한(漢)의 우북평(右
            지』·『몽배금태조』를 집필하였는데, 고구려의                      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侵襲(침습)

            좌원대첩의 대역사를 『명림답부전』에서 전하                       케 하더니 (한의) 요동태수(遼東太守) 채동(蔡彤)이

            고 있다.                                         은의(恩誼)와 신의(信義)로써 우리에게 대하므로 다
                                                          시 (한과) 화친하였다.

            좌원대첩을 왜 한국역사학계에서 숨기려 했는가?                     (二年, 春, 遣將襲漢 北平·漁陽·上谷·大原,

              400년 한나라 제국이 몰락으로 가며 삼국지                    而遼東大守蔡彤,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의 시대가 열린 이 결정적인 역사 대전쟁을 왜                     -『삼국사기』「고구려본기」<모본왕 2년>조

            한국 사학계는 역사 속에 묻어 두려 했을까?

            본고를 읽으면서 짐작하시듯, 바로 평양 낙랑                      3년 2월에 요서(遼西)에 10성(城)을 쌓아 한병(漢
            군 설정의 논리 속에서는 좌원대첩의 역사는                       兵)을 방비하였다.

            드러내기 어려운 역사 전쟁 사건인 것이다. 고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구려와 후한의 대군이 대전투를 벌인 좌원(坐原)                    -『삼국사기』「고구려본기」<태조왕>조
            의 위치 문제도 평양 낙랑군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사학계                     위의 모본왕 기록은 서기 49년, 요서 10성 기
            에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삼국사기』「지리지」                  록은 서기 55년 기록이다. 고구려의 서북경계

            에는 삼국시대 지명 중 위치를 명확히 비정하                     를 알 수 있는 주요한 기록이지만, 현 사학계는
            기 어려운 지명을 묶어서 <삼국유명미상지분                      고대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지 않고 죄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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