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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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한 한민족의 역사상은 해양의 위치와 역할을 했다. 사실은 시베리아를 비롯해 유라시아의
재인식하는 ‘해륙사관’과 ‘해륙문명’이라는 틀 대부분 지역에서 강상 수군들이 활동했다. 고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윤명철, 『한국 해양사』) 동 구려도 사료에는 없지만, 자연환경으로 보아
아지중해라는 역사의 터 속에서 존재한 모든 강상 수군이 활동했을 것은 분명하다. 고구려
국가들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 육지와 함께 해 가 해양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예는 3세기 전반
양도 영역화시켜야만 했다. 이른바 해륙국가를 에 동천왕과 양자강 하류인 건강(남경)에 수도
지향하고, 해륙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해야만 했 를 둔 오나라와 해상무역을 벌이고 군사동맹
다. 특히 만주 일대와 한반도의 북부를 기본 터 을 맺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조조·유비·제갈량
전으로 삼은 고구려에게 해양 활동은 매우 중 이 죽고, 손권이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233
요했다. 년이다. 고구려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오나
라에 담비가죽 1000장, 할계피(꿩 가죽)와 전략
고구려 전기의 강상(江上) 수군과 해양 활동 물자인 각궁(고구려의 활) 등을 보냈으며 두 나라
한국인들은 고구려가 광활한 만주 벌판을 는 우호 관계를 발전시켰다. 또 235년에는 오
달리던 기마민족의 나라로만 알고 있다. 오랫 나라 사신에 말을 수백 필 주었는데, 타고 온
동안 약소국이라는 설움과 열등감을 벗어버릴 사신선이 작아 80필만 싣고 갔다는 기록도 있
수 있는 이미지다. 또한 일본 학자인 에가미 나 다. 중국 지역은 4세기부터 ‘5호 16국 시대’라
미오가 주장한 ‘기마민족국가설(4세기경 북방의 는 대분열기로서 육지는 물론이고 바다도 갈
부여·고구려 계통의 기마민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라졌다. 한편 백제는 근초고왕 이후 강력해져
건너가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는 이론)’을 무비판적으 서 서해를 건너 양자강 하류의 동진과 교류하
로 수용한 것도 한 몫 한다. 고 남해를 이용해서 왜에 진출하고 있었다. 반
고구려는 뛰어난 무장력을 갖추고, 요동의 면에 가야와 신라는 아직 약체국가였다.
평원과 중만주 일대의 초원에서 기마군단을 운
용하였지만, 동시에 정예 수군과 왕성한 해양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시대의 해양 활동
활동으로 이름난 명실공히 ‘해륙국가’였다. 만 고구려가 본격적인 해륙국가로 발전한 것은
주는 서북쪽의 일부 초원과 건조 지대를 빼놓 광개토태왕 때였다. 태왕은 18세인 391년에
고는 송화강, 요하, 흑룡강, 모란강을 비롯한 즉위하자, 동서남북으로 공격을 펼치는 한편
60여 개의 큰 강들이 흘렀다. 근대까지도 큰 으로 외교관계도 맺었다. 백제의 해양 거점이
배들이 다녔고, 1930년대 초에는 일본의 관동 었을 관미성(강화도설, 오두산성설이 있음)을 함락해
군이 흑룡강과 송화강에서 강방 함대를 운영 한강 하구와 경기만의 백제 함대를 무력화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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