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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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반도) 등 10개국과 연결된 교통망을 정비했 몇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이어 부(副)수도이며
다. 그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청해성 일대의 토 핵심 방어성인 요동성(오열홀, 현재 요양시)을 집중
욕혼,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지역과도 우호 관 적으로 공격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전선이
계를 맺었다. 이때 사할린 지역에 있던 유귀 교착상태에 빠지자 수양제는 평양성을 해륙 협
국(流鬼國) 사신을 보내왔다. 또한 난공사 끝에 공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육군은 경무장한 별
2,000km 가까운 대운하를 완공했다. 고구려전 동대 30만 명을 요하 전선으로 우회시켜 평양
을 준비하는 군사적인 용도로 이용해 610년 7 성을 향해 신속히 진군하게 했다. 이때 산동해
월에 양자강과 회하 이남 지역의 인부와 선박 안을 출항한 수군 함대는 황해를 건너 평양성
을 동원해 군량미를 북경 일대인 탁군(郡)으로 을 협공하고, 도착한 별동대에 군수물자를 제
운반했다. 또 강남에서 적함(赤艦), 루선(樓船) 등 공하는 계획을 세웠다. 래호아는 대동강 상륙
수만 척을 건조해 산동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작전에 성공한 후, 단독으로 평양성을 공격했
주력 전선인 오아(五牙)는 누(다락)가 5층이고, 전 다. 하지만 고건무 장군(후에 영류왕)의 유인작전
사 800명을 태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 대동강 방어체제에 걸려 평양성 60리 밖에
동튀르크는 이미 수나라에 항복했고, 반면 말 서 궤멸했다. 그러자 우중문과 우문술의 별동
갈은 대부분이 고구려의 전력이 됐다. 고구려 대는 급히 퇴각을 하고, 대기하던 을지문덕은
는 ‘거수지책(拒守之策)’ 즉 방어정책을 펼치는 살수(압록강설, 청천강설, 대양하설)에서 수공작전으
한편, 우호적인 왜국에 사신단과 승려들을 집 로 전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요하를 건너 살아
중적으로 파견했다. 실제로 영양왕은 전쟁 상
황임에도 불구하고, 605년 왜국에서 최초의 사 고수 전쟁 해양전도
찰인 아스카사(寺)를 세울 때 황금을 무려 300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도
냥이나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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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612년, 수양제가 이끄는 113만여 명 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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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다국적 군대가 북경 근처의 탁군을 출발했 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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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 두 배에 달하는 보조 인력이 동원됐다. 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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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4군 편제인데, 11개 군은 수로군으로 작전
범위가 압록강 하구, 평양, 한강 유역까지였다.
출항한 배의 행렬이 수백 리에 걸쳐 늘어설 정
도의 대규모 선단이었다. 수양제는 육군을 지
휘하여 요하 도하작전을 어렵게 성공시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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