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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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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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으며, 백성 4만 명이 당나라에 끌려갔고, 양
               ② 2단계-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곡 50만 석을 탈취 당했다. 이어 당 태종은 남
              당나라는 선공을 하면서 해륙 양면작전을                      쪽으로 이동해 백암성에서 항복을 받았고, 안

            개시했다. 644년 7월에 강주와 홍주(강서성 일대)                시성을 공격했다. 두 나라는 무려 90일 동안이
            등에서 전선 400척을 만들어 군량을 운반했                     나 공방전을 벌였으나, 결국 당나라군은 패배

            다. 큰 전선들은 800명의 병사를 수용했고, 일                  하고 후퇴를 했다. 한편 이 무렵에 수군 장군인

            반 누선(樓船)도 200명의 병사를 태울 수 있었                  장량은 평양성 직접 공격을 계획했다. 4만 명
            다. 645년 4월 육군은 요하를 건너 개모성(심양                 의 병력(『당회요』에는 7만 명)과 500여 척의 선박

            외곽), 신성(무순 시내) 등을 점령하고, 별렀던 요                으로 산둥반도의 동래항(현재 펑라이시)을 발진했
            동성을 공격했다. 요동성은 15일 만에 함락됐                    다. 묘도군도를 따라 요동 반도 남단이자, 발

            고, 병사 1만 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이 포로가                   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해상관문이며, 내륙 진






                                                                                    고당 전쟁 해양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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