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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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한 장수’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있다. 중국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서에는 그가 무릎을 꿇고 당 태종에게 목숨
            을 구걸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이 기록은                     (이때) 고연수와 고혜진의 부대는 포위되어 더 이

            곧바로 그의 생애 전체를 대굴욕과 치욕으로                       상 저항할 수 없었고, 결국 남은 군사 3만 6천여

            덮어버렸다.                                        명을 이끌고 항복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이들 가
 글. 박유태 기자    한국의 대중 온라인 백과사전들도 이를 그                      운데 욕살 이하 지휘관 3천5백 명을 선발해 당나

            대로 따르고, 심지어 중국의 발해 관련 전시관                     라 내지로 이주시켰고,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석
            에서도 이러한 항복 서사를 전시 자료로 활용                      방해 평양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말갈인 3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필자가 직접 가서 확                    천3백 명은 전원 생매장했다. 당군은 이 과정에서

            인한 발해상경유지박물관에 전시된 발해사 관                       말 5만 필, 소 5만 두, 명광 갑옷 1만 벌을 비롯해
            련 글을 보면, 말갈인이며 고구려 북부 욕살이                     각종 군수품을 노획했다고 한다. 이세민은 전투

            었던 고연수가 당나라에 항복하여 당 태종으                       가 벌어진 산의 이름을 ‘주필산’이라 개명하고, 고
            로부터 벼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                     연수에게는 홍려경, 고혜진에게는 사농경의 벼슬

            록을 마주한 순간부터 필자의 머릿 속에서는                       을 내렸다.  -『신당서』「열전」<동이>조

            고연수 장군의 억울한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중국은 당시 어찌 되었든 고구려를 멸망시킨                     주필산 전투에 대한 이러한 중국 측 기록은

            후, 최후의 승자가 되어 고구려와의 전쟁사를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이다.

            철저히 왜곡시켰다. 이제 우리는 그 굴레를 벗                     우선 사서에는 이세적과 장손무기 등이 이끈
            겨내야 한다. 고연수 장군의 이름을 다시 세우                    3~5만 명의 병력이 고구려 15만 대군을 순식

            고, 주필산 전투의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야말                     간에 괴멸시켰다고만 전한다. 그러나 정작 어

            로 오늘 우리 후손이 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                    떻게 전투가 전개되었는지, 어떤 전술과 과정
                                                         이 있었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만약 당

            의문투성이의 기록                                    군의 위대한 승리였다면 그 전투 장면을 세밀

              핵심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당 태종이 대군                    하게 묘사하며 오히려 과장했을 법한데, 그 부
            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해 안시성에 이르자,                     분은 완전히 비어 있다.

            고구려의 북부 욕살 고연수와 남부 욕살 고혜                      사서에 따르면 주필산에서 고구려군은 2만
            진이 15만의 주력군을 이끌고 안시성 방면으                     병력을 잃고, 말갈 병력 3,300명이 생매장당했

            로 진격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두 장수의                    으며, 장수 3,500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군대는 당군에게 포위되어 더 이상 저항할 수                     그리고 남은 수만 병력은 모두 석방했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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