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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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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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끝까지 싸운 지휘관으로 묘사하고 있 태종은 평양으로 진격하지 못한 채 퇴각할 수
다는 점이다.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처럼 서로 다른 기록이 존재하는 고연수 장군의 명예 회복은 곧 고구려사의
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 정사만을 ‘사 주권 회복이다. 항복의 낙인을 지우고, 그를 고
실’로 받아들여왔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같 구려 항전사의 주역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우
은 대중 플랫폼은 『태백일사』에 대한 서술을 리는 더 이상 “항복 장수”라는 굴레에 묶인 채
“위서이므로 신빙성이 없다”라고 단정하면서, 자존을 꺾여서는 안 된다. 고연수는 항복자가
중국 정사의 항복 기록은 아무런 비판 없이 사 아니라, 고구려의 수호자였다. 그의 이름을 되
실로 전한다. 찾는 일은, 역사의 진실을 되찾는 일이며, 우리
이제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는 정말 항복했 민족의 자존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
는가, 아니면 황제의 권위를 위해 억울하게 굴 이제 후손이 선언해야 한다. 고연수의 항복
복자로 기록된 것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기록은 허구이며, 고연수 장군은 명예롭게 기
뿐이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패자의 억울함을 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15만의 고구려 군의 명
푸는 것은 후손의 의무다. 고연수는 단순한 패 예도 회복시켜야 한다. 주필산 전투는 승리의
장이 아니었다. 그는 북부 욕살로서 남부 욕살 기록이었다. 이 승리가 있었기에 안시성도 함
고혜진과 함께 고구려의 15만 대군을 지휘하 께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며 나라를 지킨 장수였다. 안시성과 연계해 당 이것이 바로 왜곡된 역사를 넘어 진실로 가
군의 진군을 막아낸 중심축이었으며, 결국 당 는 첫 걸음이다.
영화 <안시성> 중, 주필산 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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