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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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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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공감 용도 모순투성이다. 『구당서』에는 고연수가 홍
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구려 주력군이 주필산 려경(鴻臚卿)에 임명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이
에서 단 한 번 패배로 전멸하고 포로가 되었다 후 전쟁에서 그의 이름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
는 중국의 기록은 사실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는다. 또한 그가 당군과 함께 안시성 전투에 참
막대한 병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재편되어 안시 여했다는 서술은 같은 사서 안에서조차 안시성
성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 전투의 결말을 설명하는 부분과 충돌한다. 기
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군이 주필산에서 거둔 록은 그가 가족을 걱정해 평양성 공격을 건의
승리를 발판으로 평양까지 밀고 들어가지 못한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이후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오히려 그 모순 때문 의 행적은 흐릿하다. 결국 당 태종과 함께 귀환
에 “당군이 주필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기 도중 병을 얻어 죽었다는 결말로 맺는데, 이는
록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다. 항복 장수의 비극적 최후라는 ‘정형화된 패턴’
이어 15만 대군을 거느린 고연수가 포위당 에 불과하다.
하자 결국 고혜진과 함께 군문으로 기어들어 이러한 중국 측 기록의 특징은, ‘황제의 친정
와 항복을 청하며 목숨을 구걸했다고 기록한 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다. 심지어 당나라 벼슬을 받고 종군했다는 내 다. 황제가 직접 출전했는데, 패배했다고 쓸 수
주필산 전투에 대한 묘
사 ©KBS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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