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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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음 해인 663년에는 더 많은 군사를 증파 이러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대륙
했다. 을 상실하고 해양 주도권을 일부 빼앗기면서
663년 나당 연합군은 결국 백제 복국군의 동아지중해의 중핵 조정 역할이 약해졌다. 또
본거지인 주류성을 점령했고, 백제·왜 동맹군 한 거란·선비·말갈 등 방계 종족들은 훗날 우리
과 8월, 백강 해전이 벌어졌다. 당군은 170척 를 압박한 강대국으로 변신했다. 한편 일본열
을 동원했고, 왜군은 1,000척이 참전했다. 치 도에는 탈출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주도
열한 전투 끝에 백제·왜 동맹군은 400여 척의 적으로 참여한 일본국이 탄생(670년)했으며, 이
전선이 불타고, 2만 7,000여 명이 전사하는 참 들은 신라는 물론 한민족과 영원한 적대적 관
패를 당했다. 복국군의 왕인 부여풍(의자왕의 아 계를 고수하게 된다. 만약 고구려가 해양 활동
들)은 고구려로 도주했고, 수많은 백제 유민들 이 더욱 활발하여 해군 전력을 강화시키고, 장
과 왜군은 일본열도로 탈출했다. 그리고 곳곳 수대왕 때처럼 해양을 활용하여 등거리 외교
에 산성 등 방어 체제를 구축하고, 670년 일본 와 다중 방사상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국 탄생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나라는 총력 면 당나라에 멸망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
을 기울여 667년 9월부터 고립무원인 고구려 을까?
를 공격했다. 668년 6월 말부터 7월 초 사이에 지금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중국 중심의 질
압록강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고, 9월 수륙양면 서가 강요되는 현실 속에서 남북한의 적대감
작전과 남북 협공을 받던 평양성은 내부의 배 은 더욱 높아간다.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미국
신으로 인해 함락 당했다. 그러나 압록강 이북 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러시
의 40여 성은 계속 저항했으며, 안시성은 671 아도 남진에 관심을 보인다. 또한 동아시아에
년 7월에야 항복했다. 70년 동안 벌어진 대전 서는 11개 지역에서 영토갈등이 발생하고, 그
쟁도 막을 내렸다. 이후에 고구려는 당나라와 가운데 8개는 해양영토 갈등이다.(윤명철, 『동아
대결하는 신라를 도와 백제 유민들과 손잡고 시아의 영토분쟁과 역사 갈등의 연구』) 대륙 세력과 해
육지와 해양에서 당나라와 전투를 벌였다. 양 세력이 조우하는 우리 영토에서 광개토태왕
과 장수대왕의 해륙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매
맺음말 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육지 영토 뿐만 아니라 해양 활동
이 활발한 해륙 국가였다. 동아지중해의 중핵
을 차지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가치
를 최대한 활용해 강국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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