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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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의 거점인 비사성(지금의 대련시 금주) 앞에 상륙                 까 사비성이 함락당한 주요한 원인은 나당 연

            했다. 해군사령부였던 비사성은 음력 5월, 서                    합 수군의 급습을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백제
            문으로 야간 급습을 받아 8000명이 전사하면                    에선 즉시 복국군이 등장해 나당 연합군과 치

            서 함락 당했다. 승리한 장량은 일부 함대를 압                   열하게 전투를 벌였고, 왜국에 도움을 청했다.

            록강 하구로 파견했으나, 자신은 안시성으로                      왜국은 정세 판단의 미숙과 해전 능력 부족 때
            갈 수 없었다. 고구려가 요동 반도 남쪽 해안                    문에 파병이 더뎠다. 왜국의 천황인 사이메이

            과 섬들에 구축한 성들과 수군들의 완강한 저                     가 661년 2월 큐슈 북부에 도착해 임시관청
            항 때문이었다.                                     을 설치하다 죽고, 뒤이어 아들 덴치(훗날 천황)

              대패하고 돌아간 당 태종은 해양 능력을 바                    가 8월에 군사와 무기, 식량 등을 보냈다. 9월

            탕으로 다시 647년과 648년에 대규모의 병사                   에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5,000명의 군사
            와 군수물자를 요동 반도의 남부 해안과 한반                     와 함께 귀국해 백제의 복국전쟁을 이끈다.(『일

            도의 서해안 지역에 상륙시키는 작전을 추진했                     본서기』) 이렇게 해서 남부에서는 나당 연합군과
            다. 648년 7월에는 양자강 상류(사천)에서 전선                 백제·왜 동맹국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북부와

            들을 대규모로 건조하고, 8월에는 홍주 등에서                    만주에서는 말갈을 동원한 고구려군과 당군이

            1,100척을 건조하게 했다.                             거느린 다국적군 간의 공방전이 육지와 바다에
                                                         서 동시에 계속됐다. 이렇게 한민족 전체는 동

                                                         아시아 질서재편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③ 3단계-소위 ‘삼국통일전쟁’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뒤, 육지와 해양
              당태종은 대패한 후에 결국 648년에 죽고,                   을 활용해 고구려를 남쪽과 북·서쪽에서 협공

            뒤를 이은 고종이 659년까지 산발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 반면에 고
            벌였다. 그런데 660년 음력 7월 초, 소정방이                  구려는 돌궐, 거란 등 북방 세력과 남쪽의 백

            이끄는 13만 군대와 1,900여 척의 함선(『삼국유                제, 왜국을 하나로 묶는 공조 체제를 구축하지

            사』)이 서해를 횡단한 후, 덕물도(지금의 덕적도)에                못했다. 당나라군은 660년 12월부터 공격을
            서 대기하던 신라 함대 100척과 합류했다. 주                   개시해 661년 1월과 4월에 수륙군으로 고구려

            력군은 금강 하구 전투를 승리로 끝내고, 수륙                    를 침공했다. 8월에는 서해를 횡단한 수로군이
            양면군으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략했다.                      ‘위도’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대동강 방어선을

            이 무렵 5,000명의 결사대를 지휘한 계백 장군                  무너뜨린 뒤 평양성을 포위했다. 왜국은 662년

            은 나당 상륙군과 협공하려는 김유신의 5만 군                    초 무기와 식량 등을 백제의 복국군에 보냈고,
            대를 저지하다가 황산벌에서 실패했다. 그러니                     5월에는 군선 170여 척과 많은 병사를 파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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