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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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어 396년에는 수군을 주력군으로 ‘한강 크 등이 있는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일대까지
수로 공격작전’, ‘인천 상륙작전’, ‘남양반도 상 장악했다. 이렇게 해서 해륙국가의 틀을 완성
륙작전’을 성공시켜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 58 시켰다.
개 성(城)을 점령했다.(광개토태왕 비문) 이렇게 연 장수왕은 임금이 된 후에 꾸준히 요서를 공
안의 제해권은 물론이고, 서해 중부 이북의 해 략하는 한편 북연과 북위, 송나라가 벌이는 중
상권을 차지했다. 이어 수도를 포위·압박한 후 국의 질서 재편전에 참여해 국가의 위상을 크
에 백제왕의 항복을 받고 개선했다. 이어 압록 게 높였다. 427년에 북방 진출의 거점이었던
강 하구인 서한만, 요동만, 묘도군도 일대와 동 국내성을 떠나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평양
쪽의 장산군도 등에서 활동했다.(필자는 요동반도 은 1866년에 미국 기선인 제너럴셔먼 호가 입
남쪽의 장산군도에서 고구려 성 6개 를 찾아내 발표했다.) 항한 항구도시였다. 평양은 고구려가 남진 정
이어 410년에는 훈춘, 포시에트, 블라디보스토 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해양 진출과 해양 외교
를 유리하게 추진하는 교두보였다. 고구려는
남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 지역을 차지하면서
군사력이 강력한 서북방의 유목종족, 정치력
과 문화가 뛰어난 서남방의 중국 세력, 동북방
의 말갈계와 선비계, 그리고 남쪽에서 백제, 신
라 등과 국경을 마주했다. 이런 포위망을 풀고
여러 나라를 이용하려면 ‘이이제이(以夷制夷·divide
and rule)’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
지에서 기마군단을 활용하는 동시에 강력한 수
군 선단이 필요했다. 더구나 풍부한 말, 모피,
활, 인삼, 철 등의 자원을 수출하려면 육로 교
통망과 해양 교통망을 연결한 해륙 네트워크
의 허브여야 한다.
이어 475년에 백제 수도인 한성을 점령한 뒤
남진을 계속했다. 서쪽은 금강 이북과 대전 일
부 지역을, 동쪽은 경북의 순흥·안동·청송을 지
나 영해까지 영토로 삼았다. 481년에는 포항
광개토태왕비 앞면 왼쪽 하단에 기록된 396년 광개토태왕의 수
군작전. ‘王躬率水軍討伐殘國軍’이라 적혀 있다. 외곽인 흥해까지 공격했고, 영해까지 영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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