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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幽州. 戸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                       하며 주석으로 광무제가 회복한 낙랑의 위치

              六千七百四十八. 有雲鄣. 縣二十五.)                       를 기록했는데,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에 있다
              -『한서』「지리지」<유주(幽州) 낙랑군(樂浪郡)>조               고 하였다. 이 시기 요동은 현재의 요서와 요동

                                                         을 포함한 영역으로 차이나 초기 기록은 하북

              그런데 서기 8년 왕망이 세운 신나라는 15                   성 일대를 포함하고 있다.
            년 만에 멸망(8~23년)하는데, 낙선군 지역에서

            는 반란이 일어나 토착 세력이 주도해 가다가                      “낙랑은 군으로 옛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
            다시 이 영역을 후한(後漢)의 낙랑군으로 회복한                    (樂浪郡故朝鮮國也在遼東)”

            인물이 후한의 광무제이다.                                -『후한서』「광무본기」

              이에 대해  『후한서』「광무본기」는 “처음에
            낙랑인 왕조가 군을 점거하고 복속하지 않았                       그런데 이 낙랑군은 후한의 멸망 후(220년)

            다. 가을에 낙랑태수 왕준을 보내 격파하니 군                    다시 조위(曹魏)의 낙랑군이 되고 뒤이어 서진

            리(郡吏)들이 왕조를 죽이고 항복했다.(初樂浪人                   (西晉)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낙랑군이 멸망했다
            王調據郡不服秋遣樂浪太守王遵擊之郡吏殺調降)”고 기록                  거나 퇴출되었다고 주장해 온 313년 낙랑군은

                                                         사실 한나라의 낙랑군이 아니라 서진의 낙랑군
                                                         인 것이다.

                                                          여기서 서기 25년 광무제가 신나라를 멸망

                                                         시키고 다시 찾은 한 제국이 220년에 멸망하
                                                         는 결정적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봐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비, 손권,

                                                         조조 등의 삼국지 시대가 열리는 배경을 말한
                                                         다.

                                                          『삼국사기』에는 그 역사적 사건을 다음과 같
                                                         이 기록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원문 전체를 기술한다.



                                                          8년(172년) 겨울 11월에 한나라가 많은 군사를 거

                                                          느리고 우리나라로 쳐들어 왔다. 왕은 여러 신하

                                     후한 광무제 유수(劉秀)        들에게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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