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11월호
P. 15

2025. 11
                                                                                             2025. 11































                                                      [지도4] 612년 고구려-수(隋) 전쟁 관련 지명과 수군(隋軍)의 행군 노선




            수(L)를 건너→C(유성)→H(압록수) 서쪽에 이르                 만 명 중 단지 2천여 기(騎)만 살아서 도망하여
            는 행군 및 전투를 벌이며, 6월에 H지점에 도                   7월 24일에 요동성에 도착했고, 이를 본 수양

            착한다. 수양제의 어영(御營)과 좌우 24군의 일                  제는 즉시 다음날인 7월 25일에 군대를 서쪽

            부는 A(탁군 임삭궁)에서 바로 L(요수)에 3월 15               으로 철수시켰다.
            일 이전에 도착하여, 고구려군과 요수(L) 서쪽                    이렇게 612년의 고구려-수(隋) 전쟁이 이루어

            에서 전투를 치르고, 4월 15일에야 요수(L) 를                 졌고, 당시 고구려의 지명은 위의 [지도4]와 같
            건너 요동성(B) 공격을 계속한다. 동래(K)에서                  다. 필자는 최근 몇 년 위의 [지도4]에 나타난

            출발한 해군은 6월에 M지점의 저강(沮江)에 도                   지명들을 현지답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착하여, 배에서 내려 육로로 평양을 향해 북상                     물론 필자가 새롭게 밝혀내려고, 현지답사를
            한다. 612년 7월 우문술 등이 이끄는 구군(九                  통해 확인한 고구려 관련 사실(史實)들이 기존

            軍)은 살수, 즉 지금의 혼하(渾河)를 건너 위 [지                한국 역사학계의 왜곡된 고구려 인식 및 서술
            도4]의 D지점까지 왔다가, 지금의 요령성 요양                   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고구려

            일대에 있었던 평양성(위 [지도4]의 P지점)을 눈앞                역사로 올바로 서술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에 둔 시점에 고구려 군대의 공격을 받아 30여                   시간이 걸릴 것이다.





                                                                                              15
                                                                                              15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