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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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4] 612년 고구려-수(隋) 전쟁 관련 지명과 수군(隋軍)의 행군 노선
수(L)를 건너→C(유성)→H(압록수) 서쪽에 이르 만 명 중 단지 2천여 기(騎)만 살아서 도망하여
는 행군 및 전투를 벌이며, 6월에 H지점에 도 7월 24일에 요동성에 도착했고, 이를 본 수양
착한다. 수양제의 어영(御營)과 좌우 24군의 일 제는 즉시 다음날인 7월 25일에 군대를 서쪽
부는 A(탁군 임삭궁)에서 바로 L(요수)에 3월 15 으로 철수시켰다.
일 이전에 도착하여, 고구려군과 요수(L) 서쪽 이렇게 612년의 고구려-수(隋) 전쟁이 이루어
에서 전투를 치르고, 4월 15일에야 요수(L) 를 졌고, 당시 고구려의 지명은 위의 [지도4]와 같
건너 요동성(B) 공격을 계속한다. 동래(K)에서 다. 필자는 최근 몇 년 위의 [지도4]에 나타난
출발한 해군은 6월에 M지점의 저강(沮江)에 도 지명들을 현지답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착하여, 배에서 내려 육로로 평양을 향해 북상 물론 필자가 새롭게 밝혀내려고, 현지답사를
한다. 612년 7월 우문술 등이 이끄는 구군(九 통해 확인한 고구려 관련 사실(史實)들이 기존
軍)은 살수, 즉 지금의 혼하(渾河)를 건너 위 [지 한국 역사학계의 왜곡된 고구려 인식 및 서술
도4]의 D지점까지 왔다가, 지금의 요령성 요양 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고구려
일대에 있었던 평양성(위 [지도4]의 P지점)을 눈앞 역사로 올바로 서술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에 둔 시점에 고구려 군대의 공격을 받아 30여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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