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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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발굴 이후 1921년에 관련 보고서를 화묘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
낸 세 명의 일본학자에 따르면, 영수사벽화묘 면 요양에 있는 그 고분은 원래부터 고구려의
는 고구려 관련 무덤이 분명하고, 그 이후 요양 강역 밖 서쪽 멀리에 있었던 것이므로 한국사
일대에서 발견된 많은 벽화무덤 또한 고구려와 와 관련지어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망상
관련하여 분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5세기 이 (妄想) 때문임에 틀림없다.
전 고구려의 강역이 압록강 중류 일대와 한반
도의 중북부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오랜 편견에 [지도3]에서 볼 수 있듯, 지금도 요양에 가
갇혀있는 한국의 식민사학계는, 물론 영수사벽 면, 많은 벽화무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요양 지역에 산재한 이들 벽화무덤들의 고구
려 관련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관점
에서, 요양 일대는 5세기 이전의 고구려 영역과
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역이라는, 지금까지의
역사적 편견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다.
요양 지역을 살펴볼 때, 또 하나 새롭게 관점
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요양이 바로
427년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 일대라는 점이다.
필자는 최근 몇 년 427년 장수왕이 천도한 평
양의 위치를 연구했고, 그 평양은 지금의 요양
일대라는 보고서를 몇 차례 학계에 발표하였
다. 6)
일찍이 신채호는 평양 위치를 바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첫걸
음이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지금의 패수(浿水)·대동강을 옛날의 패수로 알
고, 지금의 평양·평안남도 중심 도시를 옛 평
[지도3] 중국 요양 태자하 일대의 벽화무덤 분포 양으로 알면 평양의 역사를 잘못 알 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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