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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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를 물으니, 모두 의논하여 말하였다.                       말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고 명

                                                          림답부에게 좌원과 질산을 식읍으로 주었다.
              “한나라 군대가 수가 많은 것을 믿고 우리를 가볍                 (八年 冬十一月 漢以大兵嚮我 王問羣臣 戰

              게 여길 것이니, 만약 나아가 싸우지 않으면 그들                 守孰便 衆議曰 漢兵恃衆輕我 若不出戰 彼

              은 우리를 비겁하다고 여겨서 자주 올 것입니다.                  以我爲怯 數來 且我國山險而路隘 此所謂
              또 우리나라는 산이 험하고 길이 좁아, 이것은 소                 一夫當關 萬夫莫當者 也 漢兵雖衆 無如

              위 「한 사람이 관(關)을 지키면 만 사람이 당할 수               我何 請出師禦之 荅夫曰 不然 漢國大民衆

              없다.」는 것입니다. 한나라 군사가 비록 수가 많                 今以强兵遠鬪 其鋒不可當也 而又兵衆者
              으나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니, 군대를 내                宜戰 兵少者宜守 兵家之常也 今漢人千里

              어서 막기를 청합니다.”                               轉糧 不能持久 若我深溝高壘 淸野以待之

                                                          彼必不過旬月 饑困而歸 我以勁卒薄之 可
              명림답부가 대답하였다.                                以得志 王然之 嬰城固守 漢人攻之不克 士

                                                          卒饑餓引還 荅夫帥數千 騎追之 戰於坐原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는 나라가 크고 백성이                  漢軍大敗 匹馬不反 王大悅 賜荅夫坐原及

              많은데 지금 강병을 거느리고 멀리 와서 싸우려                   質山 爲食邑.)
              고 하므로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습니다. 또 군사                 -『삼국사기』「고구려본기」<신대왕(新大王)>조

              가 많은 자는 의당 싸워야 하고, 군사가 적은 자

              는 의당 지켜야 하는 것이 병가의 상식입니다. 지                 [명림]답부는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그들을 추격하
              금 한나라 사람들이 군량을 천 리나 옮겼기 때문                  였고, 좌원(坐原)에서 전투를 하였다. 한나라 군대

              에 오래 견딜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도랑을                  는 크게 패하여 한 필의 말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며 들을 비워서 대비하면,                  (荅夫帥師數千騎追之, 戰於坐原. 漢軍大
              그들은 반드시 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굶주리                  敗, 匹馬不反.)

              고 곤핍해져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날랜 군                  -『삼국사기』「열전」<명림답부(明臨荅夫)>조
              사로 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렇다고 생각해서 성을 닫고 굳게 지켰다.                  위 두 개의 인용문은 172년 고구려와 후

              한나라 사람들이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사                  한과의 대전쟁 상황을 기록한 것인데, 내용
              졸들이 굶주리므로 이끌고 돌아갔다. 명림답부는                  이 충격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의 교과과

              수천의 기병을 거느리고 뒤쫓아 가서 좌원(坐原)에                정에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고구

              서 싸웠는데, 한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여 한 필의                려가 대제국 후한(後漢)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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