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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한 건축 첨성대, 현대천문학으로 밝힌 4000년 전 고대사

정밀한 건축 첨성대, 현대천문학으로 밝힌 4000년 전 고대사

[김유경의 '문화산책'] 첨성대 ④ 김장훈·박상훈, 박창범의 연구

김유경 언론인 article_ico_mail.gif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25 오전 10: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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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김장훈(아주대 건축과)·박상훈(GS건설 토건팀)의 첨성대 시공방법에 대한 연구가 나왔다. 첨성대를 건축적으로 분석한 가장 최신의 이 연구에 의하면 첨성대 몸통 각단의 원둘레를 이룬 돌들은 1단의 바깥지름 4.93m부터 23단의 2.85m에 이르기까지 줄어간다. 여기 쓰인 돌은 하나하나 정밀하게 다듬어져 각단의 원형곡선, 양옆, 위아래에 맞게 3차원적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이런 곡선 건축은 돌 하나 얹을 때마다 옮기고 들어 올리고 하는 힘든 공법이라고 한다. 첨성대 돌은 경주 남산이나 토함산의 화강암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 첨성대 각 부분의 치수. 27단에 놓인 판석과 기단부의 아랫단 초석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 김장훈
놀라운 것은 이런 돌쌓기가 모르타르 같은 접착제 없이 돌과 돌만을 중첩시켜 수평 수직, 곡선률을 맞춰가며 쌓았다는 사실이다. 김장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이는 절대로 쉽지 않은 노릇임에도 불구하고 축조 후 1365년 지난 현재에도 첨성대의 단과 단 사이, 돌과 돌 사이 수평 수직 줄눈의 정렬은 매우 완벽한 것이다."

▲ 첨성대 남쪽 개구부주변과 안쪽 ⓒ 국립문화재연구소

▲ 첨성대 12단 개구부 안쪽의 바닥과 돌 쌓은 내부벽면 ⓒ 김장훈
내부는 개구부가 있는 12단까지 흙으로 채워져 있다. 이동우의 연구로는 구조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 한다.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2009년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 촬영 내부 사진을 통해 첨성대 안팎을 세밀하게 볼 수 있다. 외부면은 매끈히 다듬어진 돌이 줄눈을 따라 정렬이 잘되어 유연한 곡선으로 흐르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간 돌의 뒷부분은 거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울퉁불퉁하다. 여기 쌓여 있는 흙과 돌 사진만으로도 '이게 1400년 전의 것인가' 싶어 아련해진다.

첨성대 축조를 위한 기초공사는 50m 깊이 까지 자갈층으로 다져져 있다. 첨성대 일대가 자갈밭이기도 한데 기초깊이가 매우 깊은 이런 공법이 원래 그런 자갈층 토질인지 첨성대를 지으면서 인위적으로 다져진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첨성대가 1400년 가까이 지어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며 이런 기초공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한다.

현재 첨성대는 과거에 도로가 나 있던 북측면 좌측이 우측보다 30cm 침하되어 북동으로 2도쯤 기울어져 있다. 그 원인으로 진동이나 첨성대 남쪽 개울의 고갈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흙의 역학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측정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10여 년째 레이저로 첨성대 기울기를 조사 중인 문화재청의 발표에 의하면, '레이저로 조사를 시작한 이 기간 중 첨성대는 전혀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여러 추정을 하게 만든다.

▲ 2012년 가을의 첨성대. 멀리서도 기하학적 곡선과 수평 수직 정렬된 눈금에 맞춰진 첨성대 돌 쌓은 세부가 보인다. 또 한단의 지대석(혹은 초석)이 땅에 묻혀 있고, 27단에는 직사각형 판석도 얹혀 있다. ⓒ 이순희

▲ 첨성대 각 단의 퇴물림(돌을 안쪽으로 조금씩 들여쌓는 법을 말함). ⓒ 국립문화재연구소첨성대 돌쌓기를 연구한 이 논문은 다음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다.

"실측도면에 따르면 원통형 몸통 각단의 평면이 조금씩 일그러진 원의 형태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일그러진 정도는 점점 심해지며,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각단의 돌들은 흐트러짐이 없는 원형평면을 이루고 있는 점은 특이한 사항이다."

김장훈·박상훈 연구의 핵심인 것이다.

"만약 일그러진 것이 지진이나 중장비 통과시의 진동 때문이라면, 모르타르 없이 쌓여진 원형평면의 석재들은 불규칙한 흐트러짐을 수반하여야 한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는 원평평면의 어긋남은 지진이나 지반침하의 진동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것은 첨성대가 북동쪽으로 2도 정도 기울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긋남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일그러진 원형평면이 만들어진 것일까? 김장훈이 더 해설했다.

"지진도, 지반침하로 인한 진동도 아니라면 첨성대는 왜 북동쪽으로 2도 기울어져 있는가? 현대의 실측만으론 알 수가 없다. 1400년 전의 건축자가 설계했을 도면을 알 수 있다면 의문이 풀릴 텐데. 그렇다면 건축자가 처음부터 의도한 바인가? 그렇게 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대체 무엇인가."

▲ 첨성대 내부에서 위쪽 구조를 올려다본 광경. 27단에 얹힌 직사각형 판석이 공간의 절반을 덮고 있다. 송민구의 연구에 의하면 24단에 1인이 앉아 사진에 보이는 26단의 정자석을 책상처럼 쓰며 천문을 관측한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헌데, '첨성대별기'의 제작자 이용환 PD로부터 의미심장한 견해를 하나 들었다.

"어떠면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2도 기울여 지은 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화면을 제작하는 카메라와 함께하는 직업적 상식으로, 첨성대 별기 제작 중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하늘 전체를 첨성대에서 관찰하려면 완전평면의 공간에는 다 담아보기 어렵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들고 크레인으로 30m 상공에 올라가 경주를 바라보면, 지도를 북쪽으로 약간 기울여 보아야 잘 보입니다. 첨성대가 있는 남쪽은 크게 보고 북쪽은 작게 압축해야 하늘 전체가 첨성대 범위 안으로 들어오거든요. 이 때문에 첨성대가 약간 기울어진 이유가 혹시라도 원래 그런 의도를 지녀 건축된 것 아닌가 하게 됩니다."

이 논문에서 또 하나 지적된 것은 남쪽을 향해 난 창-개구부의 방향이다. 2006년 문중양의 글에 따르면 첨성대 기단면의 방향은 동쪽으로 19도만큼 돌아간 방향을 향하고 있다(1971년도 박흥수 실측에는 16도 편각된 것으로, 1981년 유복모 · 강인준 · 양인태의 실측에는 18.92도 편각된 것으로 발표됐다. 가장 최근의 측정은 2003년 손호웅·이성민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개구부(남창구)의 중앙은 정남에서 동쪽으로 16도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문중양, 2006). 기단면 중앙과 남창구 중앙이 서로 간에 3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실측도면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이동우, 2008)'고 했다.

왜 이런 차이가 만들어졌을까? 첨성대를 축조한 기술로 보아 실수로 방향이 틀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가 연구과제' 라고 김장훈 교수는 말했다.

실측년도가 후기로 오면서 실측 결과가 차이 나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이는 첨성대의 기울기에 대한 것이다. 기술의 발달에 의하여 측정 장비의 정밀도가 더 높아진 것이 이유일 수 있다"고 했다.

▲ 첨성대 위에서 내려다본 중간의 정자석과 12단의 흙바닥. ⓒ 국립문화재연구소
첨성대를 두고 역사서의 기록을 검증하는 등 그동안 건축·천문·수학·종교·역사적인 측면에서 다룬 첨성대 연구결과들이 나왔다. 이제껏 소개한 논문은 그중 일부이다.

확실한 것은 근래 들어 천문이 고대사연구에서 점점 중요한 비중으로 대두된다는 사실이다. 천문학자 박창범·라대일의 1994년 논문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관측사실 검증"은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이 중국사서의 기록과는 확연히 다른 차별성을 지닌 독자관측기록이라는 사실을 검증한 것이다. 박창범 교수는 이 연구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결과 삼국사기에 기술된 삼국의 역사가 독자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록에 근거한 것임이 밝혀졌다. 반면 일식 관측지로 본 신라의 초기 강역의 위치가 사학계의 상식과 다르게 오늘날의 중국 대륙에 있게 되는 미스터리가 발생하여 사학계에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졌다."

▲ 서기 전 1734년 양력 7월 13일 초저녁 서쪽 하늘의 오성결집 현상을 인왕산 위로 재연한 모습. 오른쪽부터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초승달과 함께 늘어서 있다. <단군세기>의 오성취루 기록을 검증한 결과이다. ⓒ 박창범
또한 고려말 이암의 저작 <단군세기>(다른 저자의 저서 4종과 함께 엮은 <환단고기>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음)에 기록된 '무진 50년(서기 전 1773년)의 오성취루(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다섯 개 행성이 한 줄로 나란하게 놓이는 천문현상)' 현상을 재연하여 "실제로 서기 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있었던 오행성 결집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1993년 박창범·라대일 논문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박창범 교수의 언급은 단숨에 3700여 년의 세월을 수학과 물리학의 천문법칙을 통해 뛰어넘는 것이었다.

"<단군세기>의 여러 천문기록 중 실현 여부를 천체역학계산과 통계적 추론으로써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 연구결과는 고서에 기록된 날짜로부터 37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적 학문연구방법을 적용해서 기록의 사실여부를 가늠한 것이다. 사서 전체의 신빙성을 검증한 것은 아니라 해도 고대사기록의 하나인 <단군세기>의 자료적 가치와 신뢰를 높여주는 것이다.

연구결과 드러난 서기 전 1734년 7월 13일과 책의 기록 '무진 50년'은 1년 차이가 나지만 이는 3000년이 지난 고려 시대 기록임을 감안할 때 용납되는 시차라고 한다. 오성이 나란하게 놓이는 현상은 평균 250년에 한번 꼴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 날자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01년 박창범·이용복·이융조의 "청원 아득이 고인돌유적에서 발굴된 별자리판 연구"에서도 천문과 역사연구의 필요불가분 관계를 말해준다. 고대사의 실마리 하나가 그렇게 풀린 것이다. 박창범은 이를 두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과학의 기원 시점이 적어도 청동기 시대, 또는 고인돌 시대 (또는 고조선 시대)라는 것을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을 통해 밝힌 것도 역사 연구에 천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다."

2002년 출판된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는 이러한 천문연구와 역사의 관계, 고천문과 현대의 천문을 연계시켜 풀어쓴 것인데, 천문에서 나아가 역사 연구에 일대 충격을 준 것으로 고대사 연구의 큰 진전이기도 했다.

▲ 첨성대 옆 천문관에서 별자리를 찾아보는 어린이들 ⓒ 이순희
첨성대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대로 황도의 곡선을 한 첨성대, 지금도 정연한 줄눈 위에 놓인 돌 쌓임새의 수학을 연상해 보자. 새벽에는 동지 일출을 가리키는 첨성대 맨 아래와 맨 위의 돌 모서리를 보고, 밤에는 북두칠성의 별과 일치하는 돌이 그 안에 들어앉아 있다는 것 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별은 가깝게 느껴진다.

고래로부터 수많은 어린이가 별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정밀한 건축의 첨성대와 천문기구, 오성취루와 같은 기록으로 구현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느 나라보다 천문기록을 정확히, 그리고 많이 해왔으며 후손들에게 자산으로 남겼다.

첨성대의 역할이 다 밝혀지면 경주 문화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사소해 보이는 돌 하나가 그냥 세워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계산과 반복,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감탄하며,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새롭게 다가 온다"고 사진가 이순희가 말했다.

▲ 2012년 첨성대 주변 풍경 ⓒ 이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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