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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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삼각산에 이르고 종국에는 백악산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태조산인 백두산에서 뻗

            은 척맥의 흐름이 도성의 주산에 이르러 신령스런 땅의 기운을 전달해 준 것이다. 아미
            산은 이것을 받아 교태전으로 넘기고 궁궐의 직선축을 타고 내려와 광화문에서 지기의

            이로움을 도성 전체에 뿌린다. 바로 이것이 경복궁의 축선배치에 포개어진 숨은 논리이

            다. 요컨대 경복궁의 전각배치에서 나타낸 남북 축선배치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성리
            학자들의 예치 이념과 왕조의 입장에서 요구되었던 실리적인 풍수 효과를 동시에 만족

            시켰던 통합적 구조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왕조 조선과 경복궁을 지탱하던 신성지형 아미사 용맥은 일제 강점기에 경복

            궁의 훼철 과정에서 사라졌다. 만약 일제가 고종 대에 통용되던 아미사의 의미와 풍수

            적 기능을 염두에 두었다면 아미사와 이어진 용맥의 단절은 조선의 국권을 찬탈한 직
            후 일제가 선결해야 할 과제였을 테지만, 어차피 경복궁의 파괴는 국초부터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존되던 지형의 훼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경복궁의 훼철은 일제가 경복궁
            을 인수한 후 1915년 경복궁에서 개최한 대규모 박람회인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

            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공진회장의 단장 과정 중 내전






























                                                       『여지도(輿地圖)』수록 「조선일본유구국도(朝鮮日本
                                                       琉球國圖)」   ⓒ서울대학교 규장각
                                                       백두산에서 발원한 국토의 정기가 산줄기를 통해 주
                                                       요 도시에 공급되는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한양은 백
                                                       두대간의 지기를 담아내고 있는 국토에서 가장 중요
                                                       한 지점으로 그려져 수도 입지의 당위성이 강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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