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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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부지평면도」(1930년대)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부지평면도」 연못 부분 확대





                       의 수 많은 전각들이 뜯겨 나갔고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등을 제외한 모든 전각과 문

                       대부분이 헐리게 되었다.

                        1920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완공된 후에도 식민통치의 정당화를 홍보하는 박람회
                       는 1930년대까지 수차례 지속되었다. 그때마다 경복궁은 점진적인 파괴의 수순을 거

                       치게 되었는데, 아미산 북쪽에는 연못을 파고 일본식 회유식 정원이 조성되었다.

                        현재는 메꿔버려 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연못이 들어선 위치는 아미산 북쪽
                       담장과 인접한 흥복전의 터로서 연못의 축조는 이중으로 아미사의 풍수적 효과를 단

                       절시키려는 의도가 농후해 보인다. 풍수 이론에 따르면 땅기운은 물줄기를 만나면 멈

                       추는 특성이 있다. 즉, 흥복전 이건 직후 대규모의 연못을 아미사의 북쪽에 판 것은 공
                       진회를 개최하면서 백악에서 아미사와 연결된 산줄기를 훼손시킨 것에 이어, 아미사에

                       미미한 지기조차 공급되는 것을 막으려는 원천적인 봉쇄의 조치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 의도의 진위를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종 때까지 풍수적 가치로 보

                       존되던 아미사 용맥이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풍수적 기능이 제거되는 방법으로 소멸되

                      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아미사를 잇는 용맥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에서 점차 망각되었으
                       며 시간이 흘러 이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상실된 지금, 교태전 배후의 언덕은 주변 지형

                       과 연관성 없이 고립되어 있는 까닭에 경회루 연못을 판 흙으로 쌓은 인공산으로 규정

                       되어 버리는 안타까운 결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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