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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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하와 정사를 논하는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은 어떠한가. 정도전은 “천하의 일이 부
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廢)하게 된다”고 하여 근정전의 이름을 지
은 뜻을 밝혔다. 삼봉이 ‘근정’을 강조하며 경계한 바는, “편안히 쉬기를 오래 하면 교
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게 되고 자연히 태만해지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을 알
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군주된 자가 늘 깨어있어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고
어진 이를 알아봐 중용하라는 무언의 함의도 들어있다. 편전인 사정전에서는 다스리는
자의 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한다. ‘선정(善政)을 생각하다’는 뜻으로
만사의 옳고 그름, 이롭고 해됨을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금의 연침인 강녕전(康寧殿)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강녕전은 광화문에서부터 다
섯 번째로 위치한 정전이다. 게다가 강녕전 문의 현판은 ‘5를 권한다’는 뜻의 ‘향오문
(嚮五門)’으로 편액되어 있다. 예상되듯, 강녕전을 지목하는 숫자 ‘5’는 황극을 표상한다.
황극(皇極)은 백성을 다스리는 성왕들이 대대로 전한 심법의 요체이며, 천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지극한 중(中)의 자리를 말한다. 일국의 정사 중심에서 다스림을 베푸는 군왕
은 황극의 자리에 있는 지존한 존재이다.
정도전은 강녕전의 이름을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오복(五福) 중 셋째인 ‘강녕’
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홍범구주」는 본래 초대 단군성조 때 부루태자가 치수를 담당
했던 우사공에게 전한 오행치수법 즉, 금간옥첩에서 연원한다. 이것이 기자에게 흘러
들어가 조카인 은나라 주왕(紂王)과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전수되었다는 사실은 『환단고
기』에 기술되어 있다. 이런 「홍범구주」가 부루태자 이래 근 3800년이 지난 시점에 경복
궁의 연침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지극히 올바른 도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다음과 같이 강녕전의 속뜻을 전했다.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황극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
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中)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는 곳에 있는 것이며, 역시 애써
야 되는 것입니다.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는 너무 안일한 데에 지나쳐, 경계하는
마음이 번번이 게으른 데에 이를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바가 있고 덕이 닦이지 못한 바
가 있으면, 황극이 세워지지 않고 오복이 이지러질 것입니다. - 「태조실록」 4년(乙亥)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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