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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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흐름은 고려말, 조선 초기 유학과 불교                   성석린이 교정을 한 이성계의 신도비에서 알

            가 어우러진 구세력들과 대립하는 이념으로 등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성계의
            장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새                   아버지 이자춘을 ‘환왕(桓王)’으로 추증을 한 것

            로운 세력들의 생각은 그들 자신도 많은 문제                     을 보면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건국기와

            가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의 정
            때문에 단군을 부정하지 못하고 단지 과학적                      통성을 유지하는 이 ‘조선’이라는 이름이 어느

            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때부터인가 단군보다는 기자의 위치가 높아지
            서 기자를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기자                     고 커지게 되었다. 이런 변화의 근거는 고려말

            를 내세우면서 명나라에 보내는 공문에 늘 기                     성리파들이 원에게 사대주의를 하면서 고조선

            자를 언급하자 명나라에서도 잘 몰랐던 기자                      의 옛 땅을 기자의 땅으로 둔갑시켜 단군보다
            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런 관심은                    는 기자를 앞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국 명의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서 기자사당을                     변화는 훗날 명으로 그대로 전해지면서 성리파
            안내해달라고 하기에 이르렀고, 조선에서는 그                     들이 집권을 한 조선 중기부터는 조선을 기자

            들이 한 말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평양                   의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에 기자사당을 만들게 되었다.                             런 과정은 사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치, 사
                                                         회의식, 그리고 학문에서도 모두 바뀌어 한국

              필자는 앞에서 간단하게 몽골의 다루카치 이                    의 역사는 자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나라

            자춘의 아들 이성계가 고려왕이 되었다가 명의                     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집
            압력으로 나라 이름을 고치는 과정에서 ‘조선’                    권자들과 기득권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앞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

            서 설명하였듯이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한 것                     봐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의 역사를 연구할 때
            은 당시 고려의 국조격인 단군조선을 잇는다는                     비록 조선 중기 이후는 성리학이 큰 흐름인 것

            생각으로 지은 것이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기                     이 맞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있다
            자조선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조선시대사 연구에서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권근이 지었고,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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