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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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바름’을 구현
경복궁의 모든 공간은 질서정연한 축선 배치만큼이나 엄격한 예치와 법치의 규범에
의해 통제된다. 임금 역시 그러한 운용규범을 따라야 했으며 자기 수양과 절제를 통해
천민(天民)을 교화하는 정사를 펼치도록 경복궁은 설계되었다. 공간의 정형성이 심할수
록 사용자의 긴장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경복궁이 남북 일직선의 축선과 좌우대칭의
삼엄한 공간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역대 임금은 자연스럽게 이를 기피하였다. 그들이 자
연 지형과 지세를 살려 건물을 짓고 자연에 안겨있는 넓은 후원이 있는 창덕궁을 더욱
사랑했던 것은 인간적인 심정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성리학은 군주를 하늘이 내린 인물이 아닌 왕위를 세습하는 자연인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면이 있기 마련인데, 부단한 자기 수양으로 단
점을 극복한 성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서 경복궁의 조형에 나
타난 정형성과 규범성은 수신을 통해 바름(正)으로 향하는 도의를 실현하기 위한 반듯
하고 정연한 공간틀로 작용한다.
경복궁의 도처에는 국왕의 수신을 강조하는 유교철학의 메시지로 충만하다. 남문에
서 강녕전까지 다섯 문을 통과하는 일자 축선과 그 위의 건물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
를 정(正)자이다.
주지하듯,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다. 그런데 창건 당시의 본래 이름은 ‘정문(正門)’
이었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지만 여기에 내포된 함의는 매우 심오하다. 정도전은 『시
경』 「대아(大雅)」에서 ‘군자의 크나큰 복’을 의미하는 ‘경복(景福)’의 뜻을 취하여 궁의 이
름을 짓고, 대문의 이름을 ‘정문’으로 명명했다. 그는 “정(政)은 곧 정(正)이다”라고 하여
정치의 근본을 천하를 바르게 하는 행위로 보았다. 삼봉이 주장하는 정치는 윤리·도덕
규범과 독립되어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실천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도덕의 실천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되고 궁극적으로 타인과 백성의 잘못을 바로잡아주
는 데까지 확대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바르게 하는 정기(正己)가 선행되
어야 하며 그런 자라야 남을 바르게 하는 정인(正人)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경복궁은 정
문에서부터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정치가 모두 바름을 닦고 실천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경복궁이 내뿜는 바른 기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심 축선을 타고 올라간다.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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