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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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도전이 설계한 규범적 공간틀과 별개로 궁궐의 중요 건물들과 긴밀하게 결합

되어 있는 풍수적 지형이 또 다른 공간틀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복궁이 주산에
밀착되어 도성의 북쪽에 치우친 것에 그치지 않고,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는 전각이

주산의 산줄기와 맞닿게 배치된 점은 풍수적 원리가 경복궁의 조영에 큰 영향을 미쳤

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 전통 공간의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택지의 과정은, 먼저
혈처를 찾고 그 앞에 가장 핵심적인 건축물을 배치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경

복궁 핵심 전각의 입지와 공간구성에서도 우리 전래의 택지방식과 다름없는 풍수적 개
념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아미사(蛾眉砂) 대혈(大穴), 지금의 교태전 뒤의 아미산 아래에 궁

궐 전각을 펼쳐놓아 산의 정기를 담으려는 의도가 경복궁의 축선 배치에서 발견된다.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를 준용한 장엄과 존엄의 표현

1395년 정도전은 경복궁의 여러 전각 이름을 짓고,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
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되게 하여야 한다”고 상언했다. 궁궐은 국왕이

거처하면서 모든 정사를 관장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왕실의 존엄은 궁궐의 규
모와 외관으로 표현되어야 했다.

궁궐은 한 나라의 관념적·상징적 중심이다. 경복궁의 터가 고려의 남경 행궁터 아래

로 결정된 직후 정도전은 새 왕조의 궁궐에 어떠한 질서를 부여할지 고민하였다. 그는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이에 일차적으로 동아시아 궁궐 조영에 보편적으로 적용된

「동관고공기(이하 고공기)」의 궁궐 지침을 경복궁에 도입하였다. 「고공기」 <장인(匠人)>조

에 매우 간략하게 언급된 좌묘우사(左廟右社)·면조후시(面朝後市)·전조후침(前朝後寢)·오문삼
조(五門三朝)는 고대부터 동아시아 국가의 표준적 도성·궁궐 제도의 근간이 된 지침이다.

동아시아 전통시대는 이러한 주례 식 도시구조와 궁궐 형식을 통해 왕도정치의 보편

적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정도전도 이를 준용하여 ‘정문-법전-편전-침전’으로 이어지
는 일원적이고 직선적인 표준 배치를 선택하였다.

우선 정도전은 『주례』의 내용을 도식으로 풀이한 책인 『주례경도(周禮經圖)』에서 「조
위침묘사직도(朝位寢廟社稷圖)」를 참조하여, 핵심 전당의 배치를 하나의 중심 축선에 두고

부수되는 건물은 좌우대칭으로 위치시켰다. 동아시아 궁궐의 내부공간은 주로 기하학

적인 중심을 추구하는 축선배치법을 통해 국왕의 위엄과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이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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