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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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지식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지만, 사람의                      고려 조정은 고민 끝에 앞서 말한 바와 같

            말을 들을 줄 알았기 때문에 주변에 큰 꿈을                     이 ‘화령’, ‘조선’이라는 두 개의 이름을 보냈다.
            꾸던 참모들의 말을 잘 들었다. 더구나 그가 새                   이 두 이름의 속내를 뜯어보자면 ‘화령’은 이성

            세상을 여는 일을 주저하던 것이 정당성이 있                     계의 고향인 현재 중국 길림성 송화강 동부지

            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정도전을 비롯한 사람                     역을 말하는 것이니 고려의 땅을 말하는 것으
            들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으로 설득을 시키자                     로 넓게는 현재 중국의 길림성, 요녕성을 아우

            명분에서도 큰 문제가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                    르는 의미도 있는데 즉 그의 세력권이라는 말
            었다. 그는 1392년에 왕씨의 왕계를 무너뜨리                   이다. 다음으로 ‘조선’이라는 말은 고려 역사를

            고 스스로 고려의 왕위에 올랐다. 이성계는 조                    볼 때 고려의 시조격인 나라로 이 땅에서 대대

            선의 왕이 된 것이 아니고, 고려의 왕위에 오른                   로 이어 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고려의 왕이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                    것이다. 이때 많은 관리들은 조선을 기자와 관

            것이다.                                         련하여 조선이라는 이름을 짓자고 하였다. 여
              그리고 머지않아 현재 중국 강소성 남경에                     기에는 정도전도 포함이 된다.

            있는 명에 고려 국왕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냈

            다. 명의 홍무제는 고려 국왕의 옥쇄가 찍힌 국                    성인이 왕통을 창시하였으니 문득 기자의 옛 봉
            서를 보고 노발대발하며 나라 이름을 바꾸도                       토를 다스리었으며, 황제의 명령이 아름다웠으니

            록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홍무제는 고려가 명                    조선(朝鮮)의 미호(美號)를 주었습니다. 종사에 영

            과 대등하게 맞짱을 뜬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광이 오고 신민(臣民)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삼가
            있었다. 더구나 아직 요양지역이 어느 나라 영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순제(舜帝)의 문명(文明)

            토로 귀속이 될지 결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다 뛰어났으며, 탕왕(湯王)의 용지(勇智)에 필적

            북방의 가장 큰 적이었던 고려라는 국새가 찍                      (匹敵)하셨습니다. 구가(謳歌)의 따른 바에 순응하
            힌 문서를 보았을 때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다.                    고 역수(曆數)의 돌아온 바를 받아서 하민(下民)을

                                                          다스리는 인덕(仁德)을 미루어 넓히고, 대국(大國)
            ‘조선’의 유래                                      을 섬기는 예절에 더욱 근실히 하셨으니, 한 장의

              명으로부터 나라 이름을 바꾸라는 공문을                       종이에 열 줄 되는 조칙이 먼저 그 이름을 바루게

            받자 이성계는 바로 그 일에 착수하였다. 이 작                    하였으매, 억년 만년의 기업(基業)이 지금부터 처
            업의 시작이 조선 시대가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음 시작되었습니다. 신 등은 성상의 병위(兵衛)를

            근거가 된다. 스스로 바꿨으면 문제가 되지 않                     모시지 못하여, 비록 빨리 달려가는 반열에 나아

            을 것을 만대에 비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가지 못했사오나, 즐거이 도성(都城) 사람들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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