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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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협상회 성된 도리에 어찌 남녀가 다를 수 있겠는가”라
국채보상의무소, 진안 장수 양군, 군산 며 은장도와 은가락지 등 패물들을 기부하며
항 객주상사, 장성군, 정읍, 제주군 신제면 상 동참하였다.
덕리, 부안군, 무장, 완도, 광주, 구례, 해남, 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헤이그 특사였던 이
주, 태인 준 열사는 서울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설립
수안 재령군, 은진, 안악군, 은률군, 옹 한 초대 소장이었고, 안중근 장군은 국채보상
진, 장연 기성회 관서지부장이었다. 안중근의 모친인 조
함흥군, 함흥군 북면, 함흥주 북면 상 마리아 여사도 평안남도 <삼화항 은금폐지부
동, 원산항, 흥원군, 영흥, 경성 인회>를 통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국채보상서도의성회, 국채보상의연권 이렇게 전국으로 뻗어간 운동이었지만, 실패
고회, 평양, 한북국채보상단성회, 국채보상관 로 돌아갔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대한
서동맹, 정주군, 통진, 용청부, 중화군, 철산군, 매일신보>의 베델과 양기탁이 일제의 모함(의연
의주, 태헌, 영유 금 도용)에 의해 구속 되어버린 것이다. 구심점이
없어지자 국채보상운동은 지지부진해졌다. 운
국채보상운동은 대구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동은 실패했지만, 이를 통해 걷힌 의연금은 나
있던 서상돈이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자고 제 중에 민간대학 건립이나 독립자금으로 활용되
안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당시 사장이었던 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2017년에 그 가
김광제가 이에 호응하였고, 운동이 전국적으로 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퍼져나갔다. 여성들도 “나라를 위한 마음과 백 됐다.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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