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대한사랑 5월호
P. 11

2025. 5

            『삼국유사』의 기구한 운명                               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유사』 연

              13세기 고려 후기, 일연 스님은 민족의 뿌리                  구의 불씨를 지핀 것은 일본 도쿄제국대학 국
            를 꿰어 하나로 잇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것이                    사학과였다. 츠보이 쿠메조라는 학자가 1904

            바로 『삼국유사』다. 하지만, 이 위대한 기록은                   년, (정덕본을 저본으로 한) 『삼국유사』를 사지총서

            오래도록 침묵 속에 잠들게 된다. 1512년, 경                  (史地叢書)의 하나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에는
            북 경주에서 목판으로 인쇄된 『삼국유사 정덕                     당연히 '석유환국'으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박

            본(중종 임신본)』은 고요한 조선의 땅에서 잠시                   물관 소장본인 1904년 동경제국대학에서 발
            빛을 보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광풍 속에서                     행한 『삼국유사』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이 귀중한 책은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2년 전 동경제대 사학과에

            된다.                                          서 기존에 있던 『삼국유사』 판본을 교정하여
              왜장 가토 기요마사. 그는 경주의 부윤 이계                   발간한 것이다. 그런데 두 책 모두 사학과 대학

            복이 간행한 이 정덕본을 ‘가장 귀중한 전리품’                   원과정 교재로 사용된 책인데, 츠보이 쿠메조
            이라 여겼고, 이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바                     는 환국이라고 명확히 표기했다.

            쳤다. 이 책은 이후 일본에서 ‘도쿠가와가 사랑

            한 책’이 되었다. 일본 지식인 사회는 『삼국유                   이마니시류의 덧칠 조작과 최남선의 분개
            사』에 매혹됐지만, 정작 조선 땅에서는 『삼국                     이에 적잖이 당황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

            유사』의 존재조차 점점 잊혀졌다.                           는 안정복이 소장했던 순암수택본을 일본으로

                                                         반출해 1921년 교토제국대학에서 영인 간행했
                                                         다. 일본 경도(교토)제국대학 나이토 토라지로

                                                         우(內藤虎次郞) 교수와 이마니시 류(今西龍) 조교는
                                                         『삼국유사』 정덕본을 바탕으로 한 순암수택본

                                                         『삼국유사』를 간행한다. 이 책도 역시 정덕본

                                                         이 모본이기에 ‘환국桓囯’이라고 쓰여 있다. 그
                                                         런데 여기에 이마니시류가 환국이라 써 있는

                                                         부분에 덧칠을 가하여 환인으로 조작을 가한
                                                         것이다. 글자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날조했다
            20세기 초 환국이라 쓰인『삼국유사』의 발간
                                                         는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 조선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육당 최남선은 이를 “민족의 정체성을 지우
            이후, 『삼국유사』는 다시 일본에서 조명을 받
                                                         는 천인의 망필”이라 비판하며, 한 글자의 변조


                                                                                              11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