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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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환국이 적혀 있는 또 다른 문헌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는 『삼한고기』의 내

              구사(舊史) 『단군기(檀君紀)』에 이르기를 “신인(神              용을 빌어 환웅이 ‘환국’의 서자라는 점을 명확
              人)이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자,                히 밝혔다.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군주로 삼으니, 이때가
                                                          또 『해동악부』를 지은 이복휴 역시 「환웅사」
              당요(唐堯) 무진년(기원전 2333)이다. 상(商)나라 무
                                                         에서
              정(武丁) 8년 을미일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

              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 하였다.                        古記云昔桓國君庶子雄

              이 내용은 『삼한고기(三韓古記)』에 나오는데, 이제
                                                          이라고 하여 환국을 인용하고 있다. 『해동악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살펴보면 『삼한고기』의 내
                                                         부』는 상고시대부터 17세기까지 우리 역사에
              용을 기재하기를 “옛날 환국(桓國) 제석(帝釋)의 서
                                                         서 고대의 건국 시조 및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
              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건을 249수의 영사시(詠史詩, 특정 역사를 통해 이와
              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
                                                         유사하거나 반대되는 당대의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오니, 이곳을 일러 신시(神
                                                         시)로 읊은 것을 말하는데, 『해동악부』는 조선
              市)라 하였는바 이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
                                                         후기 총 16편이 출현할 정도로 유행했다. 특히
              다....” -남구만, 『약천집』「동사변증」
                                                         이복휴의 『해동악부』는 각 편마다 사평이 달려

              남구만은 『삼국유사』「기이」편 <고조선>조                    있어 사실고증, 사료보충, 한국 및 중국의 다
            에서 인용한 『고기』는 『삼한고기』라고 밝혔다.                   른 역사사실과의 비교와 대조 등 다양한 내용

            남구만은 안변부사와 함경관찰사를 역임하면                       이 실려 있어 현존하는 우리나라 악부시 가운

            서 조선과 중국 사이 국경의 중요성을 인식하                     데 최고, 최대의 악부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문
            면서 『동사변증』에서 패수의 고증을 시도하는                     헌들의 기록은 환국을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대해 적극적인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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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만의 『약천집』 「동사변증」                           이복휴의 『해동악부』 「환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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