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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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또한 독립단 소속 지방공작원이 되어 식량을 공급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
였다. 겨울에는 의주(義州), 삭주(朔州)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천마산대(天麻
山隊)에 가입하여 경찰서, 금광사무소 등을 기습하였다. 노획한 군수물자와 금괴 등은
군자금으로 충당하였다.
천마산대는 1920년 12월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 등이 중심이 되어
청장년 500여 명으로 조직한 무장 독립군으로서 재래식 무기인 화승총과 적에게 빼앗
은 무기로 무장하고 도내 각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의 주재소, 경찰서, 면사무소
를 습격하고 일제의 밀정과 경찰들을 처단하는 등 맹활약을 하였다.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오동진(吳東振) 장군의 신임을 얻음
1923년 초 천마산대에 대한 일제의 초토화 작전으로 독립군 근거지와 그 일대에 거
주하고 있던 대한인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에 최시흥은 천마산대를 이끌고 만주 유
하현으로 이동하였다. 그 후 천마산대는 그곳에서 무장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광복군
총영(光復軍總營)과 합류하여 광복군철마별영(光復軍鐵馬別營)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때 양
세봉은 검사관으로 임명되어 불량한 병사들을 선도하는 등 군기 확립에 진력하는 한편
훈련을 강화하여 의용군을 정규군 수준으로 끌어올려, 총영장인 오동진 장군으로부터
크게 신임을 받았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9월 관전현 안자구(安子溝)에서 발족한 무장
단체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지방 사령부로 주로 북한 지역의 국내 진공
작전을 벌였다. 송암 오동진 장군은 관대하면서 인자했으며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인물
로 봉오동 대첩의 영웅 여천 홍범도 장군과 함께 『환단고기』 편찬 자금과 광개토태왕
릉비 기록을 위한 자금을 댔던 인물로 감옥에서 48일간 단식 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대한통의부 의군으로 활동. 일제 기관들을 분쇄
1922년 8월 남만주지역의 각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
하였다. 통의부는 김동삼(金東三) 총장 지휘 아래 남만주지역에서의 민, 군정을 통합한
독립 정부 형태를 갖추었다. 양세봉은 대한통의부의 의군 산하 제3중대 소속으로 평북
일대의 일본 경찰서,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여 수십 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23년 8월 독립운동 방향의 대립으로 통의부의 의용군 소속 제1, 2, 3, 5중대를 주축
으로 하여 참의부를 조직하게 되었다. 양세봉은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일경과 교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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