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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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두되어 정의부 내부의 분열이 표출되었다.

              정의부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약하고 있던 양세봉은 정의부 대표로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앞장섰다. 이후 정의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군정부인 국민부를 조직하였고, 민

            족유일당 조직동맹을 조선혁명당으로 개편하고, 국민부 예하 조직으로서 무장단체인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였다. 종전의 정의부에 소속되어 있던 부대를 개편하고, 참의부와
            신민부에 있던 일부 병력을 흡수하여 통합시켰다. 양세봉은 부사령이라는 중책을 맡아

            일본의 기관 습격 및 일제의 밀정 처단 등 무장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조선혁명군 군기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혁명군 총사령으로 한·중 연합부대를 편성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만주 지역을 침략한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한국과 중국의
            연대투쟁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이즈음 양세봉은 조선혁명당 집행위원에 선

            출되어,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조선혁명

            군 총사령에 선임되어, 일제와의 결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군의 조직을 5개 사로 개편하
            여,  제1 사령에 박대호(朴大浩), 제2 사령에 한검추(韓劍秋), 제3 사령에 조화선(趙化善), 제

            4 사령에 최윤구(崔允龜), 제5 사령에 정광배(鄭光培)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총사령 본부를
            홍경현 왕청문에 이동하여 설치하고, 정의부에서 세운 화흥중학(化興中學)을 속성사관학

            교로 개편하여 조선혁명군 관할하에 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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