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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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남북한 국립묘지에 양세봉 장군이 동시에 있는 이유

                        장군이 순국하자 동지들은 일제 측에서 모르게 산 중턱에 평장(平葬)을 하였다. 그러
                       나 일본 경찰이 이를 탐지하고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목을 가져가 효시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인륜도 도덕도 없는 야만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였다. 이후 양

                       세봉 장군의 조선혁명군은 김호석(金浩石)이 총사령으로 취임하였으나, 급격히 세력이
                       위축되어 소규모 유격전으로 겨우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항일 무장 투쟁사에서

                      일찍이 명성을 떨쳤던 김좌진, 홍범도 등과 함께 실력과 명망을 가진 조선혁명군 총사

                       령 양세봉 장군의 독립 정신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애국 헌신 그리고 연전연승으로 전
                       승(全勝)한 명장으로서 모습은 지금도 사람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1974년

                      10월 17일에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국립서울 현충원에 유골
                       이 없는 묘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북한도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애국렬사릉에

                       양세봉의 무덤을 조성하였다. 우리와 달리 헛무덤(墟墓)이 아니라면 중국 만주에 있었을
                       유해를 중국 정부 수립 후 우호 국가인 북한에 보내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양세

                       봉을 우대하는 이유는 김일성이 아버지 김형직을 일찍 여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인물 중 한 명이 양세봉이었으며, 김일성 자신이 양세
                       봉 부대에 속했던 개인적인 인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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