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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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구르 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목제국들에서 흔히 보이는 지배층 내부의

            권력 투쟁이 몰락의 주된 원인이었다. 795년, 전통적으로 카간을 배출하던 야글라카르
            (藥羅葛) 씨족이 아닌 에디즈(硤跌) 씨족 출신의 인물이 카간이 되면서 두 씨족 간의 갈등

            이 폭발하였다. 결국 한쪽이 외부 세력인 키르키스 인들을 끌어들였는데, 이 키르키스

            에 의해 840년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였다.
              당시 몽골 초원에는 극심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위구르인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겨울에 기온이 크게 내려가고 눈이 많이 오면 초원의 가축들이 대거 죽는 사태가 일어
            나는데, 이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외의 재난 속에서 키

            르키스인들이 침입해오자 위구르인들은 몽골의 초원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주하였다.

            일부 집단은 황하 연안의 오르도스로 내려와 당나라 공주를 인질로 잡고 당나라에 식
            량과 병력을 요구하며 중국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였으나 당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

            다. 그 우두머리인 위게 카간은 3천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흑룡강 근처까지 이동하여
            실위족에 투항하였으나 그곳에서 피살당하고 말았다.

              또 다른 집단은 카간의 조카 팡 테긴이 이끌었는데, 이들은 파미르 고원 서쪽의 추

            강 일대로 이동했다. 그곳에 있던 카를룩 부족에게 항복하였다가 내부 불만이 커지자
            팡 테긴은 당나라 안서도호부가 있던 베슈발리크(别失八里)로 이동하였다. 텐산산맥 북

            쪽에 인접한 베슈발리크에서 팡 테긴은 당나라의 제후로 책봉을 받았다. 그는 곧 텐산

            산맥을 넘어 투르판 분지로 진출하여 옛 고창국 지역에 성을 쌓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




                                                         몽골초원에 위치한 위구르 제국의 카라발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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