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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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오구즈 투르크에 속한다. 돌궐 제국이 해체된 뒤 혼란이 이어지

            자, 오구즈 투르크의 일부는 카를룩, 위구르, 키르키스 등 더 강한 부족들에게 밀려 서
            쪽으로 이동했고, 8세기 경에는 아랄해 동쪽의 초원지대인 시르다리야 주변에 정착하

            였다. 이들은 같은 투르크계인 카자르인들이 볼가강 주변에 세운 카자르 제국과, 카자

            르의 뒤를 이은 키예프 루스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셀주크 가문은 이러한 오구즈계 투르크족 가운데 속했다. ‘셀주크’ 혹은 ‘살죽’이라

            고도 불리는 이들은 9세기 후반 카라한 왕조가 세워지던 무렵 활동한 셀주크라는 인물
            의 후손이다. 부족장이었던 그는 오구즈 야브구를 섬겼지만,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시르다리야 강가에 있는 젠드 시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985년), 그의 아들들 이름은 미하일, 이스라엘, 모세, 요나 등으로 유대식 이름을 가졌
            다고 전해진다. 이는 인접한 카자르 제국에 널리 퍼져있던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

            로 보인다. 그러나 아들들 역시 부친과 함께 결국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이후 셀주크 가문은 이슬람의 ‘가지’(전사, 戰士)로서 이슬람 확산을 위한 전투에 앞장

            서게 된다. 같은 투르크족이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부족들은 그들의 주요 공격 대상

            이 되었다. 당시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이란계인 사만 왕조와 투르크계인 가즈나 왕
            조, 카라한 왕조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경쟁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경쟁은 셀주크 가

            문이 세력을 키우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은 가즈나 왕조의 땅을 빼앗고 셀주

            크 제국을 세웠다.(1040년) 셀주크 제국을 세운 인물은 셀주크의 손자인 토그릴이었다.
            그는 1055년,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인 칼리프로부터 그를 괴롭히는 이란의 부와이흐

            왕조를 물리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바그다드로 진격하여 부와이흐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에 칼리프는 그에게 아랍어로 권력자를 뜻하는 ‘술탄’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당시
            칼리프였던 카임 빈 오무룰라는 토그릴에게 ‘동서의 지배자’라는 상징으로 두 자루의

            칼을 허리에 꽂아주었다고 한다. 중동과 투르크 지역의 지배자라는 의미였다. 투르크
            인인 셀주크 술탄이 이슬람 세계의 사실상 최고 권력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셀주크

            술탄국은 1071년, 오늘날 투르키예의 국경 근처인 만치케르트(투르크어로는 말라즈기르트)

            에서 비잔틴 제국 군대를 격파하고 비잔틴 황제를 포로로 잡았다. 비잔틴 황제 로마노
            스 디오게네스는 몸값과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났다. 이 전투 후 투르크

            인들이 다양한 규모의 집단을 형성하여 소아시아(아나톨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약
            화된 비잔틴 제국은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이 지역으로 들어온 투르크인들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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