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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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 사람들은 ‘투르크멘’이라 불렀는데 학자들은 이를 ‘진짜 투르크인’ 혹은 ‘이슬람 투

                       르크인’ 등으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11세기 카라한 칸국의 유명한 학자 마흐무
                       드 알 카슈가리는 투르크멘을 오구즈 투르크와 동일시하였다.

                        셀주크 왕조는 이들 투르크멘 전사들을 동원하여 아나톨리아를 정복했으며, 트란스

                       옥시아나로부터 이란, 이라크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은 11세기 말
                       지중해 연안까지 도달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도의 성지 예루살렘까지 점령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결국 성지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파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제1차 십자군이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팔레스타

                      인과 시리아를 차지하였지만, 셀주크 제국에게 더 심각한 것은 셀주크 제국 내부의 분

                      열이었다. 셀주크 술탄 제국은 12세기 초 네 개의 술탄국으로 분열되었다. 동부의 이라
                       크-호라산 술탄국, 이란과 파키스탄의 케르만 술탄국, 시리아 술탄국 그리고 아나톨리

                       아 술탄국이었다. 이 가운데 아나톨리아 술탄국(1077-1308), 셀주크인들이 부른 바로는
                      ‘룸 술탄국’이 가장 오래 존속했다. 룸은 동로마를 말한다. 그러나 룸 술탄국은 13세기

                       전반 몽골 군대에 패배하여 몽골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이후 아나톨리아 셀주크의 세

                       력은 약화 되고 많은 부족 집단들이 사실상 독립세력이 되었다. 그 우두머리들은 형식
                       적으로는 셀주크 술탄의 지배를 인정하여 ‘부족장’이라는 뜻의 ‘베이’라는 칭호를 사용

                       하였다. 나중에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오스만 가문도 이런 베이들 중 하나였다.



                                                 단다나칸 전투(1040년)에서 가즈나 왕조를 이킨 셀주크 투르크 군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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