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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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 로 안정화되는 중세 이후에는 무역 거점으로서
었다. 주변에는 주길삼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통신사
신공황후, 그리고 그의 아들로 그려져 있는 응 가 머물러 가는 거점지이기도 했는데, 장주번
신왕과 연관된 신사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이 (長州藩, 쵸오슈우한)이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이신)
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을 의식하여 일부러 셋 을 성공시킨 이후, 급격한 발전을 이뤄 근세에
팅 시켜놓은 신사들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주길신사는 이러한 산구현의 역사와 함께
뢰호내해의 입구에 세워진 하관의 주길신사 존재해 왔는데, 이 신사 역시 『연희식』에 실린
산구현(山口縣, 야마구치켄)은 구주에서 본주(本 신사이기에 아주 오래된 신사라는 점을 알 수
州, 혼슈우)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현으로, 있다. 이 신사는 장문국(長門國, 나가토노 쿠니) 제
그 중에서도 하관 일대는 고대에는 출운지역으 1궁으로 일본의 3대 주길신사에 속하기도 하
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었고, 중세 이후에는 뢰 는데, 다른 두 3대 주길신사와의 가장 큰 차이
호내해로 출입하는 관문이었다. 이러한 입지조 점은 오직 이 신사 만이 주길삼신의 신성(神性)
건 덕분에 고대에는 철 문화가 일본으로 전파 중 거칠고 적극적이며 용맹한 혼을 뜻하는 황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일본이 본격적으 혼(荒魂, 아라미타마)을 모신다는 점이다. 다시 말
장문국 제1궁, 하관시의 주길신사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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