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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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다. 전체 규모는 53,300㎡(약 17,000평)이이 전시공간을 만들어 성소의 엄숙함을 강조하는
며, 묘역의 중심 축선상에 산문(山門), 오봉루(五 동시에 신화가 아닌 역사 속 인물의 현장임을
鳳樓), 요정정(堯井亭), 광운전(廣運殿), 침궁(寢宮)이 교육하는 야외 전시장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배치되어 있다. 요묘에 도착하면 광장이 꽤 넓 이번 답사에서 방문한 순제릉도 마찬가지였으
게 조성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주변에 도시 며, 운성시의 철우상, 영락궁, 관작루를 비롯하
의 랜드마크로 설치된 요문(堯門)이 위용을 뽐내 여 마지막으로 방문한 황하 풍경구도 그러했
며 서 있다. 다.
요묘 입구에서 패방 형식의 산문(山門)과 오봉 사실 지금까지 알려진 요의 당나라 소재지만
루(五鳳樓)까지 걸어가는 데만 한참 걸린다. 이 해도 산서성, 하북성과 하남성에 달한다. 진한
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참도의 거리가 지나 대까지 이곳 임분이 당국(唐國)의 수도였다는 인
치게 긴 경우는 보통, 정부 주도로 새롭게 조성 식은 나타나지 않는다. 최소한 7세기 이후에야
된 것들이며, 중화주의를 전파하는 이념적 장 임분 지역을 요의 도읍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는
치로 보면 된다. 특히 요순우의 사묘와 능이 모 데, 그러한 인식으로 이곳 산서성의 요묘도 남
두 존재하는 산서성에서 자신들의 뿌리 역사에 북조시대인 서진(西晉)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다
관련된 유적에는 어김없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분히 ‘만들어진 전통’일 가능성이 큰 부분이다.
요묘 산문과 ‘文明始祖’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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