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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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춘추시대 위나라의 도성 유적지이자 위씨 다.
의 기원이 되는 득성지이기도 하다. 안내석 너
머에 잔존 토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구릉이 눈 원시천존과 삼청
에 띈다. 산문을 지나 좀 걸어가니 곧바로 용호 용호전 안쪽으로 들어서면 영락궁의 주전인
전이 나온다. 용호전은 ‘무극문(無極門)’이라고 삼청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호전과 삼청전
도 하며, 영락궁의 궁문으로 사용된 대문이었 사이에는 직선 참도[甬道]가 지면보다 상당히 높
다. 중국 전통 도관에는 흔히 좌측에 청룡, 우 게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실 공간에서 정
측에 백호를 배치하여 도교의 성소를 수호하도 전과 연결된 도로포장이 신도와 어도의 삼도
록 한다. 마치 사찰에서 금강문이나 천왕문을 로 나뉜 것에 비하면 단출하지만 거의 월대 수
배치하여 금강역사와 사대천왕이 호위하도록 준으로 도로를 높이 올렸다. 그런가 하면, 마당
한 것과 같다. 주지해야 할 부분은, 영락궁에 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빽빽
는 벽화와 함께 제작된 소상(塑像) 대부분이 멸 하게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데, 전에는 없던 것
실되었고, 벽화만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들이다. 도교 사원의 정전 앞마당은 궁궐, 사찰
청룡, 백호상의 실물은 없고, 전각의 이름으로 과 마찬가지로 식재가 지양되는 것이 일반적이
서 본래의 용도를 전할 따름이다. 용호전 벽화 다. 이는 정전 건축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
는 32존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나, 과거에 함이기도 하지만, 제례나 묘회가 벌어질 때 많
묘회 연희의 장소로 이용되어 칼, 창, 검, 극 등 은 인파가 모이는 집회 기능 때문이기도 하다.
소품을 벽에 세워두면서 긁혀나간 것들이 많 이건 전의 배치 상황을 보여주는 도면을 보면
영락궁 삼청전 전경과 영락궁 삼청전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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