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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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생긴 이름이다.

              1959년, 삼문협(三門峽) 수력댐을 건설할 시기 영락궁은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당시 총리였던 주은래는 영락궁을

            20km 떨어진 용천촌 북쪽 교외인 ‘고위성(古魏城) 유적지’

            로 이건할 것을 지시했고, 전체 이건까지는 5년이 넘는 시
            간이 소요되었다. 이건 공사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벽화의

            절단과 운송이었다고 한다. 벽화는 인물화가 주를 이루며,
            여러 인물이 밀집하여 그려져 있고 심지어 상하로 4~5층까

            지 겹쳐있어 평균적으로 자르면 얼굴 부분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벽화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불균등 절
            단 방법을 채택하였으며, 인물의 머리와 의복의 경계를 따

            라 절단하여 세부적 손상을 피하는 복잡한 절단공법이 행
            해졌다고 한다. 그런 방식으로 총 1,000㎡에 이르는 벽화

            를 신중히 떼어내어 수백 조각으로 분리하여 이동했고, 벽

            화 부위를 정교하게 접착하여 영락궁 벽화가 완벽히 복원
            될 수 있었다.

              도교 전적과 비문에 따르면 이곳은 여동빈 조사가 태어

            나 성장한 곳이다. 여동빈의 사후, 지역인들은 그가 살던
            집을 고쳐 여공사(呂公祠)로 이름짓고 계절마다 제사를 지냈

            다고 한다. 금나라 말에 여동빈의 신비한 행적이 널리 알려

            지면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자, 작은 암자였던 여
            공사는 도관으로 확장되기까지 하였으나, 1244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때 몽고 통치자의 신임을 받았던 전진파 수
            장 구처기는 여공사의 구지에 광대한 규모의 대순양만수전

            을 재건했는데, 이에 따라 몽고 중통 3년(1262)에는 주전인

            삼청전, 순양전, 중양전이 완공되었고, 1294년에는 산문인
            용호전을 지었다고 전한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산문까지 길게 뚫린 참도를 따라가
            니 ‘고위성유지(古魏城遺址)’라 쓰인 안내석이 있다. 예성현                           이건 전의 영락궁의 배치 평면(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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