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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고유 사서를 수거하라!!

    시대별로 수거된 한민족 고유 사서

    전재우 기자

    왜 우리나라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 상고사를 조명할 역사책이 없는가? 배달 이후 6천 년 민족사에서 대한인의 상고사를 알 수 있는 사서史書가 왜 이토록 부족한가?

    지난날 우리나라 역사서가 송두리째 잿더미가 된 2대 사건이 있었다. 『기년아람紀年兒覽』 서문을 보면, 조선 말엽에 이덕무와 이만운 두 분이 서로 대화를 한다. 이덕무가 “우리의 전사前史를 알 수가 없소?” 하니까 이만운이라는 분이 “당나라 장수 이적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우리나라의 서적을 평양에서 모았는데 그 문물이 중국보다 뒤지지 않는 것을 싫어하여 죄다 불살라 버렸소. 또 신라 말에 견훤이 완산에 웅거하고는 삼국의 유서를 실어다 두었지만 패망에 이르러 불 태워 쓸어 없애 버렸소. 이것이 3천 년 내에 일어난 양대 재액이오.”라고 말했다.

    이 양대 재액(당나라 장수 이적이 고구려 서적을 불사르고 후백제의 견훤이 삼국의 유서를 불사름)으로 동방 조선의 상고 역사책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환단고기』를 읽다보면 지금은 전하지 않는 ‘한민족 고유 사서’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삼성기』, 『삼성밀기』, 『대변경』, 『조대기』, 『삼한비기』, 『신지비사』, 『진역유기』, 『고려팔관기』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소중화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황에 놓인 조선의 왕들은 이런 사서를 스스로 숨겨버렸다. 이처럼 전란과 혼란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책들이 고스란히 전수되었다면 지금의 교과서와 한국민의 역사의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환단고기』 위서론도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고,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국통맥의 온전한 역사맥과 낭가郞家정신의 힘찬 숨결이 한국인의 가슴에 고동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족한 사서史書로 인해 우리 고대사는 중국의 일방적인 기록만 믿고 기술되고 있다. 그런 책이 강단의 중심에 서 있다. 이것은 이웃집 기록만 믿고 족보族譜를 세우는 꼴 아닌가. 이웃집 기록이 정확한 기록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의도적인 왜곡과 오기가 있다면 우리역사의 족보, 국통을 바로 세우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제 수거된 시대별 한민족 고유 사서를 만나보자. 왜 이런 원형문화를 간직한 자주적인 도서들이 사라진 것인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 예종, 성종 때 팔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고유사서를 다 수거하라’는 명을 내린다. 세조는 ‘『고조선비사』 등의 글과 책들을 개인이 사사로이 거처하는 곳에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고, 예종은 예조에 명을 내려 ‘『표훈천사』 등의 책들을 집에 소장하는 자는 바치라’는 명을 내린다. 그리고 바치지 않고 숨긴 자는 발각되면 참수를 한다[익자처참匿者處斬]는 내용이 나온다.

    유팔도관찰사왈諭八道觀察使曰: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지이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문태산文泰山ㆍ왕거인王居仁ㆍ설업등삼인기록薛業等三人記錄、《수찬기소修撰企所》 일백여권一百餘卷、《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道詵 《한도참기漢都讖記》 등문서等文書, 불의장어사처不宜藏於私處, 여유장자如有藏者, 허령진상許令進上, 이자원서책회사以自願書冊回賜, 기광유공사급사사其廣諭公私及寺社。(『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전우예조왈傳于禮曹曰: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志公記》, 《표훈천사表訓天詞》, 《삼성밀기三聖密記》, 《도증기道證記》, 《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ㆍ《옥거인玉居仁》ㆍ《설업삼인기薛業三人記》 일백여권一百餘卷, 《호중록壺中錄》, 《지화록地華錄》, 《명경수明鏡數》, 급범간천문及凡干天文, 지리地理, 음양제서가장자陰陽諸書家藏者, 경중한십월회일京中限十月晦日, 정승정원呈承政院, 외방근도십일월회일外方近道十一月晦日, 원도십이월회일遠道十二月晦日, 납소거읍納所居邑。 납자초이계納者超二階, 자원수상자급공사천구自願受賞者及公私賤口, 상면포오십필賞綿布五十匹, 은닉불납자隱匿不納者, 허인진고許人陳告, 고자의상항론상告者依上項論賞, 익자처참匿者處斬。 기속유중외其速諭中外。(『예종실록』 7권, 예종 1년 9월 18일)

    조선 초 기상관측 등을 관장하던 부서인 서운관書雲觀에는 예로부터 소장한 비기秘記가 있다고 조선태조건원릉신도비朝鮮太祖健元陵神道碑에 기록되어 있다. 서운관구장비기書雲觀舊藏秘記 유구변진단지도有九變震檀之圖 건목득자建木得子 조선즉진단지설朝鮮卽震檀之說 출자수천재지전出自數千載之前 유금내험由今乃驗 천지권우유덕天之眷佑有德 신유징재信有徵哉(《조선태조건원릉신도비朝鮮太祖健元陵神道碑》)



    위의 도표에 있는 것처럼 한민족 고유 사서들은 많이 있었다. 그 속에 어떤 내용이 어떻게 기술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큰 틀은 이해할 수 있다.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사관을 잃고 소중화사관에 물든 사람들이 놀라고, 금기시한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 『신지비사』를 가져와 70개국이 조공을 받은 단군조선의 기록을 보고 놀라, 중국이 알까 무서워 태워버리라는 태종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이 도서들만 전수되었다면 『환단고기』 위서론은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민족사학자들의 피나는 역사전쟁의 노력도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아가 한민족 원형문화를 바탕으로 세계 속에 하늘과 땅과 인간의 광명인 환단한桓檀韓의 원대한 문화를 쉽게 전파해 세상을 홍익인간의 도로 이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수거되어 제거되었다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라·고려·조선의 『환단고기』 저자들은 분명 지금은 사라진 저 문서들을 직접 읽고 그대로 옮겨 놓았을 것이다. ‘대변경大辯經 왈曰’, ‘삼한비기三韓秘記 왈曰’, ‘진역유기震域留記 왈曰’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석가불의 제자들이 ‘여시아문如是我聞’ 하는 식이다.

    이제 우리는 이를 읽고 또 읽어 그 속에 녹아 있는 한민족 역사정신과 원형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대한의 후세들의 의무이자 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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