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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鮮卑族)는 고조선의 후예로 졸본부여를 세운 부족이다

※주) 선비족(鮮卑族)의 고향은 몽고 바이칼 서남부인 홉스골(紇升骨, 홀승골)이다. 기원전 1천년 ~5백년 사이에 산서성 북부와 내몽고 지역으로 남하하여 고조선의 주요 부족이 되었다 기원전 200년 경에는 오한족은 산서성 중부(흔주시 忻州市), 선비족은 산서성 북부(대동시 大同市) 거주했던 고조선(동호 東胡)의 핵심부족이다
(몽고 홉스골에서 동남방향 평편한 지역을 가로질려 내려오면 산서성 북부인 대동시다)


■ 선비(鮮卑)는 동호를 구성했던 부족이니 고조선의 후손이다
※주) 동호는 고조선이다 [출처] 고조선古朝鮮이 동호東胡이며, 동호東胡가 고조선古朝鮮이다

사마천 사기에 흉노 묵특이 동호를 급습하고 돌아갔다고 했는데, 후한서 선비전에는 선비와 오환이 묵특에게 격파되었다고 했으니 선비와 오환이 동호(북부여)인 고조선이다 따라서 오한족은 산서성 중부(흔주시 忻州市), 선비족은 산서성 북부(대동시 大同市)로 추정된다

--- 중국 문헌 ---
'묵특은 말에 올라타 백성들에게 뒤늦게 출진하는 자도 베어 버리겠다고 명령했다. 마침내 [흉노가] 동으로 동호를 습격했다. 동호는 처음부터 흉노를 가볍게 보고 방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묵특이 군대를 이끌고 [동호 땅에] 도착해 공격하니 동호의 왕이 크게 패해 망했고 [묵특은] 그 백성(民人) 과 가축 등을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출처] 『사기 흉노열전』

--- 중국 문헌 ---
'한나라 초기에 [선비도 오환처럼] 역시 [흉노의] 묵특[선우]에게 격파되어 멀리 요동의 새외로 달아나 숨어 있었는데, 오환과 서로 접하였으며아직 중국과 늘 왕래한 것은 아니었다.' [출처] 『후한서 오환선비열전:선비


■ 선비(鮮卑)는 졸본부여를 세운 부족이다

1) 후한서의 동명신화에서 동명東明이 세운 부여夫餘는 졸본부여로 선비족이 세운 나라다
후대에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부여의 왕이되고 졸본부여를 고구려로 이름을 바꾸었다
따라서 선비는 고구려의 속민이다

2) 기원전 190년 경에 흉노 묵특의 기습공격으로 동호인 북부여가 어지려워졌다,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의 영토 확장 침략으로 동호인 오환족의 북부여가 어려움에 격게되자
동명東明이 한漢나라 군대를 산서성 중부에서 막아내고 북부여 유민을 모아서 졸본부여를 세웠다

--- 중국문헌 ---
'東明이 장성하여 활을 잘 쏘니 王이 그의 용맹함을 꺼리어 다시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東明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掩㴲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모두 모여 물 위에 떠올랐다. 東明은 그걸 밟고 물을 건너서 夫餘에 도착하여 王이 되었다.' [출처] 『후한서 동이열전:부여


■ 동명(東明)의 유철(한漢무제)와의 전쟁

1)◐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서 산서성 중부 전쟁은 동호(북부여)와 한漢나라 전투로 봐야한다

흉노와 동호(북부여)와의 경계는 황하로 흉노는 섬서성 중북부, 동호는 산서성 중북부고
흉노 선우의 영역은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의 은천시(銀川市) 부근이다

--- 중국문헌 --- [한서 흉노전에는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 있다]
'연나라에는 진개(秦開)라는 현명한 장군이 있어 흉노에 볼모가 된 적이 있었는데, 흉노가 [그를] 매우 믿었다. [진개는 그때에 정세를 잘 파악해 두었다가] 귀국하자마자 동호를 격파해 도망가게 만들었다. [동호는]이때 천 리나 물러났다.'

'연나라는 또한 장성을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쌓았고, 상곡[군](上谷郡), 어양[군](漁陽郡), 우북평[군](右北平郡), 요서[군](遼西郡), [그리고]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해 흉노를 막았다. 이 무렵 의관(衣冠)과 속대(束帶)를 할 줄 아는 [예제(禮制)의 문명국이] 전국[시대]에 일곱[戰國七雄]이었는데, [그 중에서] 세 나라가 흉노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그 이후 조나라 장군 이목(李牧)이 [지키고 있는] 시기에는 흉노가 감히 조나라의 변경을 넘볼 수가 없었다.'

:흉노의 선우(單于)를 두만(頭曼)이라 했는데, 두만은 진(秦)나라를 이겨 내지 못하고 북쪽으로 옮겨 갔다.십여 년이 지나 몽염이 죽고 제후들이 나라를 배반하여중국 전체가 소란스럽게 되자 진나라가 강제로 변경에 이주시킨 여러 유형수들이 모두 다시 [돌아가] 버리게 되었다. [이에] 흉노가 여유를 얻어 다시 조금씩 황하[를 건너] 남쪽[河南]으로 중국과 이전의 요새로 경계를 삼게 되었다.'

'[동호와] 흉노의 사이에는 버려진 땅(섬서성 중북부 추정)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천여 리에 이르렀고 [양국은] 각각 불모의 사막에 망을 보는 시설[甌脫]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묵특이 군대를 이끌고 [동호 땅에] 도착해 공격하니 동호의 왕이 크게 패해 망했고 [묵특은] 그 백성(民人) 과 가축 등을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 [출처] 『한서 흉노전

2)◐ 동명(東明)이 유철(한漢무제)을 물리쳤다
※주) 흉노를 동호로, 흉노선우를 동명東明으로 읽으면 동명東明의 활약을 알 수 있다
-->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는 동호(북부여)고, 섬서성을 포함한 서쪽은 흉노지만
동호(북부여)와 흉노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흉노로 표현했다

--- 중국문헌 --- [한서 흉노전에는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 있다]
'기원전 129년 마읍의 전투가 있은 지 5년후 가을, 한나라에서는 네 장[군]에게 각각 만 기씩을 주어 관시 부근의 흉노를 치게 했다. 장군 위청(衛靑)은 상곡[군]을 나와 용성(龍城)에 이르러 흉노의 수급과 포로 7백 인을 얻었다. 공손하(公孫賀)는 운중[군]을 나와 [흉노를 공격하였으나] 전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공손오(公孫敖)는 대[군]을 나와 흉노에게 7천 명을 잃었다. 이광(李廣)은 안문[군]을 나와 흉노에게 패해 흉노가 [이]광을 사로잡았으나 [이]광이 이후에 도망쳐 돌아왔다. 한나라에서는 [공손]오와 [이]광을 잡아가두었는데, [공손]오와 [이]광은 속전을 내고 [풀려나] 서인이 되었다. '

'그해 겨울에 흉노의 수천 명이 [한나라의 변경을] 도둑질하였는데, 어양군(漁陽郡)[의 피해가] 더욱 심했다한나라에서는 장군 한안국을 어양[군]에 주둔시켜 흉노[의 침입]에 대비케 했다. '

'그 이듬해 가을흉노의 기병 2만이 한나라로 들어와 요서(遼西) 태수(太守)를 죽이고 2천여 명을 잡아갔다. [흉노가] 또한 [변경 안으로] 들어와 어양 태수의 군대 천여 명을 패배시키고 한나라 장군 [한]안국을 포위했다. [한]안국은 마침 천여 기의 병력마저 전멸하려 하였는데, 때마침 연(燕)[왕]이 구하러가[군대가] 도착하자 흉노가 바로 물러났다. 또한 [흉노가] 안문[군]으로 들어와 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다.'

'이에 한나라에서는 장군 위청으로 하여금 3만 기를 거느리고 안문[군]에서, 이식(李息)은 대군에서 나아가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그 결과 흉노의] 수급과 포로 수천 명을 얻었다. 그 이듬해에 [위]청이 다시 운중[군]에서 나가 서쪽으로 농서에 이르러 흉노의 누번왕(樓煩王)과 백양왕(白羊王)을 하남(河南)에서 격파하여 흉노의 수급과 포로 수천과 소와 양 백여 만을 얻었다.

한나라는 마침내 하남 땅을 빼앗아 삭방[군](朔方郡)을 [설치하고 성을] 쌓고 다시 옛날 진나라의 장군 몽염이 구축했던 장성을 수리하여 황하를 따라 [방비를] 굳게 하였다.
한나라는 또한 상곡[군]의 [중심과] 떨어져 있는 현(縣)인 조양(造陽) 땅을 버리듯이 흉노에게 내주었다. 이 해가 원삭(元朔) 2년이었다.'
☞ [출처] 『한서 흉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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