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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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지를 말한다. 6진의 선비족 군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조정의 소홀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서쪽의 진주(秦州)와 농주(隴州)로부터 동쪽의 유주(幽州)와 기주(冀州)
            까지 하북 지방을 휩쓸었다. 수년간 지속된 이 봉기는 결국 진압되기는 하였지만, 이주

            영(爾朱榮) 같은 군벌이 대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주영은 선비족의 한 추장으로서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당시 황제인 효명제와 호태후 사이의 모자간 갈등에 개
            입하여 호태후를 죽이고 세 살배기 아이를 효장제로 앉혔다. 이주영은 대승상의 자리

            에 오른 후, 정국 혼란을 초래한다는 구실로 호태후와 왕족들을 2천 명이나 죽였다. 이
            주영은 황제 측에 의해 곧 죽임을 당했으나, 그의 이주씨(爾朱氏) 추종자들은 효장제를

            죽이고 연달아 새로운 허수아비 황제를 옹립하였다.

              이주씨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하북대사 고건(高乾)과 6진 장군 고환(高歡)
            등이었다. 발해 고씨인 고환은 선비족화된 한인이라는 주장도 있고 고구려 계통이라는

            설도 있다. 고환이 세운 황제인 효무제는 고환을 소탕하기 위해 이주영의 옛 부하인 우
            문태 등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고환은 효무제가 우문태에게로 도망가자 효정제를 황제

            로 세우고 수도를 낙양에서 업(鄴)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탁발씨 황제가 병립

            하는 형세가 초래되었는데, 물론 두 황제는 고환과 우문태의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이로써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분립하게 되었다.



            수ㆍ당의 뿌리
              고환의 작은 아들 고양(高洋)은 동위 황제를 폐하고 북제(北齊)를 세웠으며(550), 서위

            우문태의 아들 우문각 역시 서위 황제를 폐하고 북주(北周)의 창건자가 되었다.(557) 북

            주는 577년 북제를 정벌하여 다시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북주는 황실의 인척이었던 양
            견(楊堅)의 수중에 넘어가는데, 그는 곧 수(隋)나라를 개국하였다.(581) 한족 출신인 양견

            이 북주의 권력을 찬탈하였기 때문에 중국이 다시 한족의 지배로 돌아왔다고 한족 역
            사가들은 그를 칭찬한다. 그러나 양견의 5대조는 6진 가운데 하나인 무천진(武川鎭)의

            사마(司馬)로서 그곳에서 대대로 산 사람이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양견도 선비화된

            한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서위의 권력체제는 6인의 주국(柱國)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였는데, 6인 주국

            가운데 한 사람이 당나라를 연 이연의 조부인 이호이다. 6주국 아래의 12장군 가운
            데 한 사람이 양견의 아버지 양충이었다. 모두 우문태 밑의 무천진 군벌에 속하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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