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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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존속하였기 때문이었을까? 북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국(代國)도 16국 가운
데 들지 않으며 실제로 북방유목민이 세운 나라들 수는 16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면
에서 ‘5호16국 시대’라는 말은 정확한 용어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좌우간 탁발선비의
나라 북위는 단명한 다른 오랑캐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사의 일시적 일탈이 아니라 하
나의 중요한 시대를 이루었다는 것은 중국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중국사에서 북방유
목민족의 본격적인 첫 번째 왕조를 탁발선비가 세운 것이다. 탁발선비가 불교를 후원
하여 불교가 중국에서 크게 번창하였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또 북위의 뒤를
이은 수와 당도 그 지배층의 뿌리를 캐자면 북위로부터 나온 나라였다. 이런 면에서 보
자면 탁발선비는 중국 역사의 한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런데 탁발선비는 후한 시대를 기록한 중국 기록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은 중국의 대혼란기였던 4세기 초에야 중국의 역사무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선비족
가운데 가장 늦게서야 등장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탁발선비는 중국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다싱안링(大興安嶺)산맥 주변의 삼림지대에서 수렵·어로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으
로 보인다. 1980년 다싱안링 지구의 한 동굴에서 한자로 기록된 석각이 발견되었다. 이
석각은 북위가 북중국을 통일한 4년 후인 443년에 북위의 태무제 탁발도(拓跋燾)가 사
람을 보내어 새긴 것이다. 가셴동(알선동, 嘎仙洞)이라고 불리는 이 동굴에서 태무제의 사
신들이 황천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석각에는 탁발선비 조상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중
원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룩하였다는 언급이 있다.
가셴동이 다싱안링 산맥의 삼림지대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서 당시 탁발선비 조상들
은 삼림 속에서 수렵과 어로를 하면서 순록을 키웠던 것 같다. 오늘날도 그 일대에는
순록유목으로 살아가는 어원커(鄂温克)이나 어룬춘(鄂伦春) 같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두 족속 모두 퉁구스계인데 어원커는 러시아어로는 에벤키라 부른다. 러시아에서는 어
룬춘을 ‘오로촌’이라 한다.
가셴동 석각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탁발선비는 1세기경부터 ‘대택(大澤)’ 주변의 초원
지대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대택은 오늘날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 ‘후룬호(呼倫湖)’를
말하는데, 그 주변에는 사방 1000여 리에 달하는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곳
에서 탁발선비는 순록 대신 양이나 소, 염소 등을 키우는 유목생활을 영위하였다. 탁
발선비는 대택 지역에서 약 200년 정도 머물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6세기 중반
북제(北齊) 때 편찬된 북위의 역사서 『위서(魏書)』에 의하면 새로 도착한 곳은 ‘흉노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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