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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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匈奴故地)’였다. 옛 흉노가 살던 곳인데, 흉노가 약화되면서 흉노의 주력이 다른 지역으

            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탁발선비 집단은 이곳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당시 이곳에
            는 흉노 십여만 호가 남아있었는데, 이들은 탁발선비 집단에 흡수되었다. 이로써 탁발

            선비 집단은 단기간 내에 큰 세력이 되었다. 물론 수만 가구를 이끌고 남천(南遷)하는 것

            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서』에는 그 남천 과정이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넘는 험
            난한 과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무리를 이끈 사람은 탁발힐분(拓跋詰汾)이었는데,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아들이 탁발선
            비국의 시조인 탁발역미(拓跋力微)이다.




              『위서』의 흉노고지는 만리장성 이북의 내몽골 초원지대로 추정된다. 오늘날의 내몽
            골자치구 바린좌기(巴林左旗) 북쪽 인근에서 탁발선비족의 고분들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바린좌기 일대가 아닌가 싶다. 이곳은 후일 거란의 상경이 위치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탁발역미가 이끈 탁발선비 집단은 내몽골 초원지대 일대로 세

            력을 확대하였을 것이다. 『위서』의 기록에 따르면 탁발부 주변에 ‘서부(西部)’, ‘몰록회부

            (沒鹿回部)’ 같은 다른 선비부가 있었다. 서부와는 전쟁을 하고, 몰록회부와는 동맹관계



































                                   탁발선비국의 시조 탁발역미 ⓒ바이두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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