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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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西)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중국 북방을 지키고 있던 병주자사 유곤(劉琨)은 북방에서

            외롭게 중국 땅을 지키고 있었는데, 당시 철불흉노와 백부선비 등 북방유목민의 공격
            으로 어려움을 겪자, 탁발의로의 선비족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지난 호에서 보

            았듯이 로마제국이 훈족을 동맹으로 삼아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으려고 하였던 것과 같

            은 전략이었다. 탁발의로는 유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침략자들을 격퇴하였는데, 그 대
            가로 서진 조정은 탁발의로를 대공(代公)에 봉하였다. 탁발의로는 곧 대왕(代王)의 지위로

            승급되었는데, 그의 대국은 중국의 혼란을 틈타 서진으로부터 독립된 나라가 되었다.
            이 나라가 ‘대국(代國)’이다.

              대국은 338년 탁발부의 우두머리에 오른 십익건(什翼犍) 때에 와서는 중국식 관직과

            법률을 가진 중국식 국가로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성낙에도 성을 지었는데, 아마 중국
            식 성이었던 것 같다. 그는 모용선비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혼인관계도 맺었

            으나, 서쪽의 전진(前秦)과는 대립하였다. 376년 전진 왕 부견의 공격으로 십익건은 전
            사하고 대국은 사라졌다가, 10년 후인 386년 십익건의 손자 탁발규가 나라를 다시 세

            우고 이름을 ‘위(魏)’라고 하였다. 중국인들은 이 나라를 전국시대의 위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북위(北魏)’라고 부른다.


            북위의 건국과 한화 정책

              탁발규는 북위를 세운 후 북위에 대해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또 다른 선비족 국가인
            모용선비의 연나라와 싸워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사에서는

            이 모용선비의 나라를 후연(後燕)이라고 한다. 탁발규의 시호는 도무제(道武帝)인데, 도무

            제는 수도를 성락성에서 평성(平城)으로 옮겼다. 오늘날의 다퉁(大同)이다. 성락은 초원지
            대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평성은 중원에 가까운 곳이었다. 평성은 6대 효문제 때 낙양

            으로 다시 천도하기까지 근 100년간 북위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소위 중국사의 ‘5호16국 시대’는 탁발규의 손자인 3대 탁발도에 의해 끝이 났다. 도

            무제 탁발규처럼 청소년 시기에 왕이 되었던 태무제 탁발도는 조부처럼 많은 무공을

            세웠다. 430년 혁련씨의 하(夏), 436년 후연의 계승국 북연, 439년 흉노계 저거씨의 북
            량(北涼) 등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북위는 유목민의 나라로서 5호16국 시대를 종식시키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는 역
            사적 의미도 가졌지만, 새로운 통치체제를 시도하였다는 데서도 주목할 만하다. 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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