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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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맺었다. 탁발역미는 몰록회부의 부족장인 두헌의 눈에 띄어 그의 사위가 되었는데,

                       종국에는 몰록회부를 흡수할 수 있었다. 당시 내몽골 지역의 유목민들은 탁발선비는
                       말할 것도 없고 흉노, 투르크계인 정령, 몽골계인 유연, 동호계인 오환 등 다양한 부족

                       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수가 80개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사서에는 이러한 유목민

                       집단을 ‘부락(部落)’이라 표현하였다.


                       북위의 전신 대국(代國)
                        탁발역미는 다시 탁발선비의 근거지를 현재 내몽골의 후허하오터(呼和浩特) 부근의 성

                       락(盛樂)으로 옮겼다. 탁발역미는 당시 중국 북쪽을 지배하던 위나라(조조의 위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썼는데, 이러한 우호적 관계는 그의 아들과 손자
                       대에도 이어졌다. 아들 녹관은 탁발선비의 영역을 동부와 중부, 서부로 삼분하고 중부

                       와 서부는 조카들에게 맡겼다. 혼자서 다스리기에는 영토가 상당히 광대하였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서부의 경우는 그 영역이 하서주랑까지 펼쳐져 있었다.

                        308년 녹관이 병사한 후 서부의 탁발의로(拓跋猗盧)는 중부와 동부를 모두 차지한 후

                       당시 사마씨의 서진(西晉) 왕조가 내부적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만리장성 남쪽의 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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