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대한사랑 15호(202503)
P. 51

2025. 3

                       도는 일본의 중심에서 멀어져만 갔다. 일본의 역사적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면, 한반도

                       의 사국시대가 끝나고 신라와 대진국이 통치하는 남북국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은 한반
                       도로부터 독립하는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교토가 중심이었던 평안시대(平安時代, 헤이안지

                       다이)에서 가마쿠라시(鎌倉市)가 중심이 되는 겸창시대(鎌倉時代, 카마쿠라지다이)가 되면서 일

                       본의 정치경제는 관동지방(關東地方)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이후 혼돈의 전국시대(戰國
                       時代, 센고쿠지다이)가 끝난 후 강호시대(江戶時代, 에도지다이)가 되어 정치와 경제, 문화가 안

                       정되면서 대마도는 점점 일본의 변두리로 여겨지게 되었고, 한반도와의 교역소 역할을
                       하는 섬이긴 하지만 농사를 지을 땅이 거의 없어 관리하기 힘든, 버릴 수도 없고 취하자

                       니 아쉬운 일본 정부의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처지는 명치유신(明

                       治維新, 메이지이신) 이후에 더욱 가속화되어, 일본 천황을 신격화시킨 제국주의 하에서는,
                       존재를 감추고 싶으나 일본 천황의 루트라는 점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섬이 되어 버렸다.



                       대마도가 중요한 진짜 이유

                        일본 문화의 근저에는 누가 뭐래도 대마도가 있었다. 대마도는 대륙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마도 근처에 일기

                       도가 있었지만, 현재의 뱃길도 그러하듯 한반도에서 일본 대륙으로 갈 때는 대마도가

                       가장 가까운 섬이기에 대마도가 우선시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대마도
                       가 중요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마도는 일본의 역사가

                       흐름에 따라 점차 소외되었고, 독립된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에 고대의 원형문화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 대마도가 중요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일본 신도 문화의 원형이 어땠는지 대마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

                       제로 알고 보면 대마도에는 일본 창세신화와 관련된 흔적은 물론이요, 오늘날 일본 본
                       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신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번 시간에는 대마도에 남

                       아 있는 그러한 흔적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연희식』「신명장」에 기록된 대마도의 신사

                        한의학을 공부할 때 『황제내경』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듯이, 일본의 신도문화에
                       대해 공부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연희식(延喜式)』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0세기에 쓰



                                                                                              49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