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대한사랑_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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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하 마두진과 유리하를 가다 3일차의 마지막 답사 일정은 유리하습지공
다음 살펴볼 곳은 하북성 낭방시 안차구 마 원이다. 유리하(琉璃河)는 북경시 방산구를 흐르
두진(碼頭鎭)이다. 창주시에서 북쪽으로 2시간 는 하천으로 태항산에서 발원한 대석하(大石河)
정도를 달려야 한다. 낭방시도 창주처럼 ‘구하 의 하류에 해당한다. 북경시로 진입하기 위해
하초’로 불리는데, 지리적으로 해하(海河) 유역 검문소에서 한 사람씩 신분 검사를 받았다. 타
의 중하류 지역에 위치해서 이 지역을 통과하 지에서 북경으로 들어갈 때는 내국인들도 검사
는 하천들이 모두 이곳에서 모여 흐르는 특징 를 받았는데, 외국인들은 더욱 심했다. 그래도
이 있다. 이 지역을 흐르는 주요 하천이 영정하 작년처럼 짐까지 검사하진 않았다. 신분 검사
(永定河), 대청하(大淸河), 자아하(子牙河)인데 모두 시간을 제외해도 2시간 정도 걸려서 유리하습
해하(海河)의 지류로 낭방시를 지나 하류로 흘 지공원에 도착했다.
러 천진시를 지나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유리하습지공원에 도착해 보니 명나라 때 만
바로 이곳에 마두진이 있다. ‘마두(碼頭)’는 부 들어진 유리하를 가로지르는 큰 다리가 보존
두, 나루터라는 의미인데, 원나라 초기에 마을 되어 있었다. 큰 돌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마차
남쪽에 혼하(渾河, 현재 영정하)가 흘러 이곳에 나 바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각
루터가 설치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에는 지역에서 짐을 실은 마차들이 명나라의 수도,
최씨 성을 가진 가문이 관리해서 ‘최가마두(崔家 북경으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이 건넜을까 하
碼頭)’라고 불렀다가 청나라 초기에 ‘마두’로 개 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하, 즉 대석하가 앞에서
칭되었다고 한다. 즉 ‘마두진’이란 이름처럼 이
곳도 영정하를 중심으로 한 구하하초 지역으
로서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것으로 추 낭방시 마두진 관공서
정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면 여·당(麗唐)
전쟁 때 당 태종이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성을
공격하는 기록이 나온다. 당 태종이 건넌 ‘요
수’를 바로 ‘영정하(永定河)’로 보는 학설도 있는
데, 고구려의 서계(西界) 연구를 위해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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